앤드루 베일리 영국 영란은행(BOE) 총재는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멤버십 연례 총회에서 최근 두 차례의 대규모 채권시장 개입을 두고 “계획대로 이번주 말(오는 14일) 시장 개입을 중단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데일리는 이번 연례 총회에 화상으로 직접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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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위기 직면한 영국 연기금
베일리 총재는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가장 ‘핫’한 인사다. BOE가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하는 와중에 영국 국채(길트채) 금리가 폭등(길트채 가격 폭락)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채권시장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산다는 것은 곧 돈을 푼다는 의미다. BOE는 지난달 말 국채 매입을 확대하는 식으로 길트채 가격 떠받치기에 처음 나섰고, 이날 매입 대상에 물가연동국채를 포함하기로 한 내용을 골자로 두 번째 개입을 했다.
그럼에도 영국 연금생애저축협회는 BOE에 이번달 말 혹은 그 이후까지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길트채 가격 급락(금리 급등)→연기금 마진콜 직면→유동성 확보차 자산 매각 등의 후폭풍이 예상보다 심각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영국 연기금이 시장에 내놓는 자산을 누군가 받아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미 패닉장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이는 녹록지 않다는 공포가 만연해 있다. 전형적인 금융위기의 전조다.
“구제금융 없다”…선 그은 베일리
이같은 우려 속에 베일리 총재는 길트채 가격을 떠받쳐 달라는 연기금 측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베일리 총재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당국의) 개입의 본질은 일시적이라는데 있다”며 “그것은 결코 장기적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며칠 동안 밤을 지새웠다”면서도 “최근 시장 개입은 LDI 펀드들이 질서 있게 자산을 매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것이고 그 기회는 이제 3일 남았다”고 했다.
베일리 총재의 작심 발언에 금융시장은 갑자기 흔들렸다. 뉴욕 증시에서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0.65% 내린 3588.84에 마감하며 3600선이 깨졌다. 지난달 30일 기록한 연중 최저치 3585.62에 가까워졌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1.10% 내린 1만426.19까지 떨어졌다. 두 지수는 장중 줄곧 상승세를 탔다가, 베일리 총재의 발언이 나온 직후 급전직하했다. 최근 5거래일 연속 하락세다.
상황이 이렇자 국제금융시장의 시선은 당분간 영국 금융권으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BOE가 시장에서 손을 떼면서 연기금의 자산 투매가 본격화할 경우 금융위기 같은 공포 분위기가 만연할 수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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