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현동기자]
한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분석보고서가 주식시장을 흔들어놨습니다. 시장뿐 아니라 여의도 증권가에도 파문이 일었습니다. 때문에 여의도의 모든 사람들이―투자자, 감독당국, 언론―애널리스트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묵묵히 일하는 많은 애널리스트들도 할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애널리스트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증권부의 김현동 기자가 애널리스트의 존재 의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요즘 애널리스트들을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한 중소형 증권사에서는 한꺼번에 서너명의 애널리스트들이 동시에 빠져나가면서 리서치센터장이 언론을 통해 상황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외국계 애널리스트는 국내 대표주식을 사실상 "매도"하라는 투자의견을 내놓아 논란이 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달 초부터는 애널리스트의 리포트에 이상한 꼬리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상기 종목들은 X월X일 기준 당사에서 1% 이상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상기 종목들은 X월X일 기준 조사분석 담당자가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본 자료에서 투자의견이 제시된 종목은 담당 애널리스트 본인 또는 배우자가 보유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도대체 애널리스트란 누구입니까. 애널리스트(analyst)의 사전적 정의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이들은 개별기업의 내재가치나 한 업종 또는 산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연구의 결과물은 "매수"나 "매도"라는 투자의견으로 표출됩니다. 물론 이들 역시 증권사의 피고용인입니다.
애널리스트의 분석 보고서에 이같은 꼬리표가 달리게 된 배경은 표면적으로는 이렇습니다. 국내 금융시장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위원회가 증권업감독규정을 개정하면서 "증권사 애널리스트(배우자 포함)가 어떤 종목에 대한 투자를 권할 경우 그 종목에 대한 재산적 이해관계를 고지해야만 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다들 동의했습니다. 자신이 사라고 추천하는 종목을 해당 애널리스트가 보유하고 있을 경우 주가 상승에 따른 평가이익을 얻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규제를 왜 해야만 했을까하는 의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애널리스트의 존재 이유는 주식시장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으면서 동시에 해당 기업의 내재가치를 객관적이면서도 공정하게 평가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며칠전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외국계 U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자신의 투자의견을 사흘만에 번복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투자의견이 "적극매수"에서 "보유"로 사실상 "팔라"는 의미로 바뀐 셈이지요.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는 얼마전 미국의 한 애널리스트가 일반 투자자에게는 "매수" 의견을 제시하면서 정작 본인은 "쓰레기 같은 주식"이라고 평가해 파문이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외국계 애널리스트가 사흘만에 투자의견을 뒤바꾼 경위는 물론 금융감독위원의 조사결과를 기다려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우리는 국내 애널리스트들을 둘러싼 환경 역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합니다.
국내 애널리스트들은 금감위의 규제가 나오기 전에는 이메일을 통해 기관투자가나 언론사에 자신의 투자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전송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을 먼저 올리고 나서 이메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보 전달의 수단에 변화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정보전달의 시간차이가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정보의 신뢰도입니다.
한 애널리스트는 금감위의 규제이후 변화된 상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종목 리포트를 작성하고 나서 다음날 아침 일찍 기관투자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평소 안면이 없는 매니저에게 전화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 애널리스트의 말은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분석 리포트의 질보다는 리포트를 쓴 애널리스트가 "베스트 애널리스트"인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최근 직장을 옮긴 한 애널리스트도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애널리스트의 존재 이유는 객관성과 과학성이다. 하지만 생존의 근거는 인기투표다"고 말이지요.
모든 애널리스트가 다 억대 연봉을 받지는 않지만 여의도의 모든 애널리스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애널리스트가 잃을 것은 억대 연봉이겠지만 당신이 얻을 것은 믿음이다.
이제 애널리스트들은 애널리스트가 유령이라는 소문에 맞서 "분석(analysis)의 과학성과 공정성"을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도 이런 지적을 했더군요. "투자은행 산업은 신뢰의 산업이며 신뢰가 주요 자산의 하나다. 만약 월 스트리트[여의도]가 신뢰를 잃어버리면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