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이데일리가 만난 택배기사 상당수는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10년째 택배를 배달하고 있는 이모(51)는 이날도 새벽에 나와 오후 8시까지 일해야 택배 물량을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사전투표가 진행된 지난 5일과 6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는 10일 본투표일도 사정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씨는 “아침에 아이들을 챙기면서 출근을 준비하고, 온종일 몸을 쓰다가 오후 9시에나 집에 온다”며 “투표하려면 출근 전 일찍 시간을 빼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내가 빠지면 대신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만에 하나 수행률을 못 지키면 배달 지역이 다른 지점으로 넘어가 일감이 끊긴다”며 “(나 같은 택배 기사들은)특수고용직이지만 시간은 회사에 종속돼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 인정 못 받는 사각지대, 연평균 10% 증가세
이는 택배기사 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 선거권 행사 등에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수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직 종사자나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 등을 맺어 개인사업자 형태로 근무하기 때문에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이처럼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혜영 녹색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17~2021년 인적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현황 분석’에 따르면 국내 비임금노동자는 2017년 554만명에서 2021년 778만명으로 연평균 10% 이상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2년 차 택배배달기사 강모(38)씨는 “어떤 고용관계에 있든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며 “새로운 고용형태 때문에 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어서 투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유권자의 투표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손익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는 “특수고용직이나 프리랜서 모두 노동관계법령이 적용되지 않아서 선거일이 휴일로 보장되지 않지만 경제적으로 (사용자에게) 종속돼 있다는 점에서는 일반 근로자와 동일하다. 이날만큼은 휴일로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도 “문자적 해석상 근로자가 아니란 이유로 선거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헌법상 선거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이다. 이들의 권리를 보호할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