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 양보할게" 대장암 4기 투병 중인 경찰의 촉이 울렸다

ATM 고장 탓에 줄 길게 늘어선 상황
갑자기 "입금이 오래 걸리니 먼저 하시라"며 양보
작년 10월 대장암 4기 진단…현재 휴직·항암치료 중
  • 등록 2023-04-05 오후 2:21:03

    수정 2023-04-05 오후 2:21:03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휴직 중인 경찰관이 거동이 불편한 와중에도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거책을 검거해 화제다.

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충북 청주상당경찰서 소속 정세원 순경은 지난달 30일 오후 고향인 전북 익산시 한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서 수상한 남성을 목격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당시 이곳에는 2대의 ATM이 있었는데 한대가 고장 난 탓에 나머지 한대에 고객이 몰려 줄이 길게 늘어선 상황이었다.

정 순경도 ATM을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섰다. 이때 정 순경 앞에 있던 30대 후반의 남성이 자신의 차례가 오자 “입금이 오래 걸리니 먼저 하시라”며 순서를 양보했다.

지능범죄수사팀에 근무한 이력이 있는 정 순경은 남성의 말을 듣고 범죄, 보이스피싱을 직감했다고 한다.

정 순경은 “어디에, 얼마나 입금하시는 거냐” “텔레그램으로 지시받고 일하시는 거냐” 등 남성에게 질문을 이어갔지만 그는 쭈뼛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정 순경은 자신이 경찰임을 밝히고 남성이 들고 있던 가방을 확인했다. 가방에는 현금 1700만원이 봉투 3개에 나뉘어 담겨 있었다.

정 순경의 계속된 질문에 당황한 남성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핸드폰을 건넸다. 수화기 너머의 자칭 ‘직원’ 역시 “금 거래를 하는 거라 이런저런 돈을 입금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어느 거래소에서 근무하냐고 묻자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는 등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확신이 든 정 순경은 즉시 112에 신고했다. 그는 현장에 있는 남성이 도망가지 못하게 계속 추궁하며 붙잡아 둔 뒤 도착한 경찰관들에게 남성을 인계했다.

익산경찰서는 이 남성으로부터 1700만원을 회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사건을 수사 중이다.

청주상당경찰서 소속 정세원 순경 (사진=연합뉴스)
정 순경은 청주상당경찰서 소속의 3년 차 경찰관이다. 작년 10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휴직한 뒤 고향에 머물며 항암 치료를 받던 중 보이스피싱 수거책 검거에 일조했다.

검거 당시 정 순경은 항암 치료를 위해 가슴에 케모포트(약물 투여를 위한 기구)를 삽입한 상태여서 뛰거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의심스러운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저 없이 나서 1700만원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정 순경은 “1년간 지능범죄수사팀에서 근무했던 덕분에 ‘먼저 하시라’는 말 한마디에 느낌이 왔다. 마땅히 경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송금 직전 검거에 성공,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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