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마켓워치]<2>버핏은 금융株도 다 내다팔까

버크셔, 항공주 이은 금융주 매도에 뉴욕증시 `들썩`
12년 보유한 골드만삭스 주식 84% 처분…JP모건도
5월엔 BNY멜론·US뱅코프 지분도 10% 이하로 낮춰
은행 지분 10%이상 따른 규제·공시의무 회피 목적
연준 통화부양에 기회 잃어…투자은행 매력저하 한몫
대출은행株는 되레 매입…대출 수요 증가에...
  • 등록 2020-05-18 오후 12:51:43

    수정 2020-05-18 오후 1:05:41

워런 버핏 CEO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오마하의 현인(賢人)`,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일부 금융주식을 처분했다는 소식에 뉴욕 주식시장에 동요가 일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쇼크 이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최대 낙폭의 60% 이상을 만회한 상황에서도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는 금융주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기관투자가 대량 지분공시`라고 해서 `13F`라는 공시항목이 있습니다. 총자산 1억달러 이상을 굴리는 기관투자가는 매 분기가 끝나고 나면 45일 이내에 보유주식 현황과 지분 변동내역을 알려야 합니다. 버핏 CEO가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도 이 공시시한 마지막 날인 15일(현지시간)에 이 13F 공시를 했습니다.

이번 13F 공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항공주와 금융주 지분 축소였는데요, 어메리칸에어라인(10%)과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10%), 델타에어라인(11%), 유나이티드에어라인(9%) 등 4개 항공주 전량 처분은 이미 지난 2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버핏 CEO가 직접 공개했던 내용이었던지라 이번엔 금융주 지분 축소가 가장 큰 이슈로 부각됐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선, 버크셔는 보유하고 있던 골드만삭스 주식 가운데 84%를 첫 석 달간 처분했습니다. 작년 말까지 1200만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3월 말엔 190만주까지 줄었습니다. 보유액은 28억달러에서 3억달러로 줄었구요, 지분율은 2.9%에서 0.58%로 낮아졌습니다. 또 이 기간 중 JP모건체이스 보유주식도 3% 팔았습니다. 지분율을 1.94%에서 1.88%로 낮췄습니다. 또 미국 내 `톱3`에 들어가는 보험사인 트래블러스컴퍼니즈 소수 지분을 전량 처분했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버핏이 이제 금융주에 싫증이 났나` 싶을 텐데, 최근 공시를 보면 마치 금융주를 다 팔아치우겠다는 심산이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들게 됩니다. 버크셔가 이달 11~12일 양일간 US뱅코프 주식 49만7786주를 1630만달러에 팔았고, 이로 인해 보유 주식수가 1억5050만주로 줄었다고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시를 한 겁니다. 미국에선 금융회사의 중요도가 높다보니 금융주에 한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들은 (분기별로 하는 13F와는 별개로) 사고 파는 즉시 공시를 해야 합니다. 버크셔는 이번 매각으로 US뱅코프 지분율을 9%대로 낮춰 이 즉시 공시 의무가 사라졌습니다.

골드만삭스 주가와 버크셔의 보통주 전환 시기


아울러 비슷한 시기 미국 최대 수탁은행인 BNY멜론 주식 86만9103주도 처분했습니다. 보유하고 있던 주식 8900만주의 1% 정도되는 물량인데, 이로써 지분율이 10.4%에서 9.8%로 낮아졌습니다. 이 또한 지분율이 10% 아래로 내려가 보유지분에 대한 수시 공시 의무가 없어졌습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버핏의 금융주 처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긴 합니다. 버핏과 버크셔에게 금융주는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그 스스로도 그동안 “미국 경제가 성장하는 흐름 속에서 그 혜택은 은행주에게 고스란히 갈 것”이라며 은행 주식을 하나 둘씩 사모았습니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더 각별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골드만삭스가 궁지에 몰리자 버핏은 구원투수를 자처하며 당시로는 엄청난 규모인 50억달러에 이르는 우선주와 함께 보통주로 전환 가능한 신주인수권(워런트)을 샀죠. 그리고 2013년 워런트를 행사해 보통주로 전환했구요.

아울러 지금으로부터 불과 보름 전인 버크셔 정기 주총에서도 버핏 CEO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은행들은 충분한 규모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매우 잘 대처하고 있고 여전히 아주 좋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지요.

`이제부터 금융주를 다 팔아 버리겠어`라고 결심한 버핏 CEO가 괜시리 투자자들을 속여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에 이르면, 결국 버핏의 금융주 처분의 배후에는 다른 배경이 있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선, 최근 보유 주식수를 줄인 US뱅코프와 BNY멜론의 매각은 은행주 10% 보유에 따른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결정으로 봐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미국에선 은행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부터 해당 은행에 준하는 자본요건과 감독요건을 요구 받습니다. 또 SEC에는 주식을 사고 팔 때마다 지분 변동을 공시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융권에 대한 미 재무부와 연준의 지원이 늘어나면서 규제가 늘 것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주식수를 줄인 것이죠. 앞서서도 버핏 CEO는 은행주 지분율이 10%를 넘으면 유연하게 조금씩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며 지분율을 조절해 왔습니다. 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죠.

다음으로, 한꺼번에 주식을 84%나 팔아치운 골드만삭스의 경우엔 향후 실적 악화를 염두에 둔 차익실현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버크셔는 애초 2013년에 워런트를 보통주로 전환할 때 주당 115달러에 총 4350만주를 받았습니다. 이후 220~240달러 수준에서 주식을 추가로 대거 매집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버크셔의 골드만삭스 평균 매입단가를 127달러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주가가 172달러 수준이니 4억5450만달러(원화 약 56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판 셈입니다. 나름 성공적인 투자인 것이죠. 다만 JP모건 매각은 손절매로 보입니다. 애초 2018년 3월에 주가가 104~119달러일 때 처음 지분을 매입한 뒤 90~110달러 수준에서 추가 매입을 합니다. 그리고 현재 주가가 86달러 정도니 손해를 본 겁니다.

1분기말 기준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 내 산업별 비중


여기서 잠시 짚어볼 건, 버핏 CEO는 왜 월가를 대표하는 두 투자은행 지분을 팔기로 결심한 걸까요. 무엇보다 코로나19가 미국 경제에 낸 생채기가 예상보다 너무 깊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듯 합니다. 지난 주총에서 버핏 CEO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 경제라는 열차가 잠시 선로를 이탈한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그 열차가 궤도에서 끌어 내려져 옆으로 밀쳐진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월가 공룡 투자은행들이라도 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을 겁니다.

특히 버핏 CEO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연준이 보여준 발빠른 위기 대응을 지켜 보면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금융주를 싼 값에 `줍줍`할 수 있는 기회도 없을 것이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 적절하게, 그것도 매우 신속하게 대응한 연준에 경의를 표한다”며 치하한 버핏 CEO는 이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냅니다. “(연준의 그런 빠른 대응 때문에) 미국 증시에서 매력적인 어떤 것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래서 아무 주식도 사지 않았다”고. 그런 연준의 과감하고 신속한 대응은 폭락한 자산가격을 단번에 원상복귀 시키고 말았으니 말이죠.

더구나 연준의 제로금리(0~0.25%)와 무제한 국채 매입으로 인해 단기금리가 아래로 내려가더니 장기금리까지 따라 내려가 장단기 금리는 딱 달라 붙었습니다.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굴려 그 금리 차(差)로 돈을 버는 은행으로서는 수익성이 급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시장 안팎에서는 마이너스(-)금리 얘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골드만삭스나 JP모건은 트레이딩부문에서도 돈 벌기 수월치 않은 환경이 될 겁니다.

유럽 은행들을 보면서 향후에 미국 은행들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을 쓰는데 손발이 묶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을 겁니다. 버핏이 그동안 은행주에 투자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높은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이기도 했으니 말이죠. 버핏은 공공연히 “뱅크오브아메리카(BoA)를 비롯해 우리가 투자한 은행들이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며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사주를 사는 건 주주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반색했었죠.

그렇다면 버핏 CEO가 골드만삭스나 JP모건 지분을 줄인 건 미국 은행산업 전반에 대한 포기 선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BoA와 웰스파고, PNC파이낸셜에 있습니다. 올 1분기에 버크셔는 이렇게 대형 은행주를 팔면서도 PNC파이낸셜이라는 미국 최대 지방은행 주식을 더 늘렸습니다. 2018년 3분기에 당시 주가가 134~146달러일 때 처음 PNC파이낸셜 주식에 손을 댄 버크셔는 이번에 52만6930주를 추가 매입해 주식수 919만주, 지분율 5%로 늘렸습니다. 현 주가가 97달러 정도인데도 물타기를 한 셈이죠.

또 지분율이 10.7%나 되는 BoA 주식은 단 한 주도 안 팔았습니다. 그동안의 평균 매입단가가 13달러 정도인데, 현 주가는 21달러 중반대입니다. BoA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자사주 매입은 현재 유예된 상태지만, 자사주 소각을 통해 꾸준히 주주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미국 최대 모기지(우리의 주택담보대출) 은행인 웰스파고 지분도 5.28%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종합할 때 버핏 CEO와 버크셔는 은행주 가운데서도 투자은행에 가까운 주식은 처분하는 반면 대출 위주의 영업방식을 고수하는 은행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연준은 “코로나19 위기가 더 악화될 경우 자산가격이 심각한 하락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같은 자산가격 하락 가능성에다 장기 저금리와 규제 감독 강화로 인해 투자은행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본 거죠. 반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대출을 집행해야할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착안한 것으로 풀이해 봅니다. 이는 올 1분기 어닝시즌에 순이자마진(NIM) 하락에도 대출 수요 증가로 선방했던 국내 은행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주총에서 버핏 CEO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은행들이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대출이나 소비자 대출로 인해서도 앞으로 문제를 겪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은행들은 상황(대출자의 신용상태)을 잘 파악하고 있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자본도 잘 갖추고 있으니 큰 우려는 없습니다”라고. 물론 앞으로 코로나19가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이같은 결론도 성급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적어도 현재로선 버핏 CEO가 모든 금융주를 다 팔아 버릴 것이라는 걱정도 너무 성급해 보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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