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는 “당국의 연이은 약가인하정책에 제약산업을 오히려 더 퇴보할 수 있다”라며 “정부의 제약산업 지원정책을 거부할 수 있다”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제약업계, 시장형실거래가제 왜 반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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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는 도입 이전부터 제약업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제약업계는 병원과 제약사라는 거래 관계의 특수성에 따라 ‘갑’의 지위에 있는 병원이 제약사에게 의약품을 저가로 팔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실제로 이 제도가 시행됐던 2010년 10월부터 2011년 9월까지 병원이 실시한 공개입찰에서 1원으로 낙찰된 품목은 2515개로 전년동기대비 47.5% 늘었다. 제도 시행 기간 동안 총 1966억원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요양기관에 인센티브로 지급됐다.
현재 의·약사 유관단체 중 대한병원협회만 이 제도를 재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기관의 약제비 저가구매를 통한 재정절감과 의료기관의 의료수익구조 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며 복지부에 건의했다.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통해 일부 대형병원만 배불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법성 논란도 있다. 이재현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이 제도는 제약사, 도매상이 판매촉진 목적으로 제공하는 약가마진 중 70%에 상응하는 이익을 요양기관이 가져가는 것인데, 이는 음성적 리베이트를 합법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당초 복지부는 시장형실거래가 재시행을 앞두고 ‘보완 후 재시행’, ‘1~2년 유예’, ‘폐지’ 등 3가지 방안을 놓고 고민했다. 그러나 문형표 장관 취임 후 재시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순기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맹호영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시장형실거래가제의 시행을 통해 거래내역 투명화 기반을 마련하고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약가관리기전을 가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형실거래가제가 시행된 16개월 동안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는 미미했지만 이 제도를 지속적으로 가동하면 재정 절감 효과는 커지고 환자들은 약을 싸게 복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될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계산이다.
문형표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시장형실거래가제의 궁극적 목적은 제도를 더욱 노출시켜 인센티브를 지급한 뒤 그만큼의 약가인하로 약품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지만 지금껏 그렇게 된 적이 없었다”면서 “협의체를 조속히 만들어 수정이 필요하면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반복된 약가인하에 불만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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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많이 팔리는 의약품의 약가를 깎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 효과에 비해 비싸다고 판단되는 의약품의 가격을 깎는 ‘기등재약 목록정비’ 정책을 통해 지속적으로 약가인하를 시도해 왔다.
그러나 정작 제약산업 육성정책은 뒷 전으로 밀렸다. 고작 정부가 새롭게 시행한 것은 ‘혁신형제약기업 인증 제도’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실속이 없다는 반응이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은 “지난해 유례없는 약가인하를 단행한 것이 시장형실거래가제를 유예한 배경이었다”면서 “일괄 약가인하로 매년 2조원의 손실을 입고 있는데 또 다시 시장형실거래가제를 재시행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
시장형실거래가제의 재시행 결정의 절차상 문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6일 문 장관은 제약협회를 방문해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들로 구성된 협회 임원들에게 “정부와 제약협회, 전문가 등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정확한 데이터 등을 분석,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면 재검토를 시사했다. 그러나 이 후 이렇다 할 상의 없이 재시행 강행 방침을 분명히 하자 제약업계가 그동안 쌓였던 박탈감에 감정이 폭발했다.
A제약사 대표는 “제도 유예기간 2년 동안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다가 이제와서 재시행하고 보완책을 마련하자는 것은 제약산업을 육성 대상이 아닌 건보재정 절감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