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최현석기자]
최근 외환당국은 시장개입용 실탄을 넉넉하게 확보한 탓인지 예전에 비해 한결 여유로와 보입니다. 그러나 파생상품시장 등을 활용한 편법 개입의 부작용은 뒤늦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외환시장을 담당하는 최현석기자는 편법과 미봉책이 아닌 정공법적 정책만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자율적 시장안정을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난주 채권시장은 정부가 외환시장안정용국고채(환시채)를 추가로 발행할 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지난주말까지도 환시채 발행 가능성이 반반이라던 재정경제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발행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추가발행 여부에 귀를 기울이던 채권시장은 실망하는 표정이었으나, 발행 대상인 외환시장은 그야말로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다양한 루트로 개입했던 부분을 흡수하기 위한 것일 뿐, 달러매수 개입용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 거죠.
최근 물가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등에서 환율을 내리라고 하는 판이니 다음달에 환시채 발행규모를 2조원 이상으로 늘린다 한들 외환시장이 꿈쩍할 리 만무합니다. 실제로 환시채가 지난달말부터 이례적으로 3주 연속 발행돼 3조원 규모의 실탄이 마련됐으나, 오히려 환율은 한달동안 15원 가량 하락했습니다.
환시채가 `외환시장용`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채권시장용`으로 변이된 모습입니다.
시장에서는 환시채 영향력이 줄어든 원인을 이달 상반월동안 27억달러 급증하며 1700억달러를 돌파한 외환보유액에서 찾습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외환시장 개입용 원화 자금을 스왑 등 파생시장에서 조달한 뒤 최근 환시채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이를 청산, 달러 교환분이 외국환평형기금에 쌓이게 됐다는 것이죠.
외환보유액의 이상 급증은 공동 외환당국인 한은의 박승 총재마저 비판할 정도가 됐습니다.
파생상품 시장을 통한 편법적 개입의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은 비단 이 뿐이 아닙니다. 지난해 9~10월쯤 정부가 스왑시장에 발을 담근 이후 외국계은행 국내지점을 중심으로 무위험 차익거래(아비트리지)가 판을 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당국의 대규모 원화 조달 영향으로 원화와 달러 금리차를 반영하는 스왑마진이 급등했고, 여기에 외화 운용금리(Libor)를 더한 수익률이 원화 조달금리(CD)보다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은행들이 국내에서 원화를 조달해 달러로 스왑(교환)한 뒤 해외에 빌려주거나 해외에서 운용할 경우 추가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거죠.
올들어 7월까지 국내 예금은행의 해외대출금은 90억달러대로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3배이상 증가했고, 지난해 5월까지 5조원 정도였던 외은지점의 자산계정중 본점계정 잔액도 올 5월 18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시장 개입의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외환당국이 시장에서 아예 발을 떼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외환시장에는 환투기 세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북핵위기나 9월 서방 선진7개국(G7) 재무회담 등을 빌미로 환율을 폭등 또는 급락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경우 국가 경제를 위해 `본 때를 보이는` 강력한 개입이 필요합니다.
다만 편법적인 개입으로 환시채의 기능이나 시장의 자정 능력을 무기력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얘깁니다. 파생시장을 활용한 편법적인 시장 조치가 아비트리지 같은 새로운 편법을 양산하는 것은 물론, 다수의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도 이미 올초 역외선물환(NDF) 시장 규제에서 확인했습니다.
최근에는 고유가와 콜금리 인하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으로 환율하락 방어 필요성이 줄어들어 시장과 당국간 긴장관계도 점차 누그러워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시장 한켠에서는 당국이 환율 상승과 하락을 모두 막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합니다.
당국이 이번에는 당장의 안정을 위해 아래, 위를 강제로 통제하는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를 사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책이 정도를 걸어야 시장도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