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개 사업장 근로감독 시 성희롱 점검…“근본 대책 못돼”

고용부·여가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 발표
근로감독 시 성희롱 분야 포함…예방교육 실시 여부 점검
사이버 신고센터도 설치…관련 법령 카드뉴스로 보급
“신고한 피해자 불이익 개선부터…제3자 신고 확대”
중장기적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 강구해야
  • 등록 2017-11-14 오후 12:33:38

    수정 2017-11-14 오후 2:29:09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14일 사업장 근로감독시 성희롱 분야를 포함하는 내용의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임서정(가운데) 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실장이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박태진 기자] 한샘에서 벌어진 여직원 성폭력 사건과 같은 직장내 성희롱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자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징계 등 법에 정해진 조치를 미이행했을 때 현행 과태료 처분을 사업주에 대한 징역형이나 벌금형으로 처벌수위를 상향조정하고, 근로감독관을 통해 기업내 성희롱 예방교육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등 관리를 강화한다. 그러나 전문가 및 여성단체들은 이번 대책이 성희롱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볼 수 없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모든 사업장 근로감독시 성희롱 점검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는 14일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간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증가 추세가 지속되고 있고, 일부 기업에서 발생한 사내 성폭력 등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번 대책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신고건수는 2012년 263건에서 2014년 519건, 2016년 556건, 올해 10월까지 532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는 우선 사업장 점검 시 근로감독의 유형(장시간근로, 비정규직, 업종별 감독 등)에 관계 없이 모든 근로감독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 분야를 포함하도록 할 계획이다. 근로감독관이 감독하는 성희롱 분야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여부와 성희롱 발생시 사업주 조치 여부 등이다.

정부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상담 및 신고절차를 노사단체, 여성단체 등과 협조해 집중 홍보할 예정이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신고를 위한 기초상담은 고용부 고객상담센터(대표전화 1350) 또는 전국 고용평등상담실(15개소)에서 상담·지원한다.

또 지난 9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현행 과태료 수준을 상향한다.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과태료 벌칙을 징역 또는 벌금형으로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사업주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미실시했을 시 부과하던 과태료를 현행 300만원 이하에서 500만원 이하로 상향한다. 성희롱 피해자에 대해 불리한 조치를 했을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던 것을 앞으로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정부는 사내 전산망이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이버 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다. 근로자들은 이 센터를 통해 익명으로 신고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고용부의 설명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내에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사이버 신고센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희롱 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상시 30인 이상 사업장에 설치돼 있는 노사협의회(5만여곳)를 활용해 직장 내 성희롱 예방대책을 논의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법령과 정보를 일반 직장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해 이날(14일)부터 보급한다.

이밖에 사건 발생 시 관리자, 피해자, 제3자 등 주체별 대처요령이 담긴 ‘조직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안내서’를 마련해 확산시킬 예정이다. 또 민간의 미투(ME, TOO) 캠페인, 스피크아웃(SPEAK OUT) 행사 등 성희롱·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밝히는 활동에 대해서도 지원할 방침이다.

여성단체 “신고한 피해자 구제가 먼저”

여성단체들은 사업장 근로감독을 강화한다는 것에 환영의 뜻을 내비치면서도 이번 대책에 대해서는 반쪽짜리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권박미숙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장은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신고 창구를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피해자가 성희롱 신고를 하면 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것을 간파해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간 고용부가 불이익 관련 고소사건들 중에 7.7%만 기소했듯이 근로감독도 형식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근로감독관의 역량을 강화하고 신고 대상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지금까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시 국가인권위 등에서 다뤄왔고 고용노동부는 잘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근로감독관의 자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또 사이버 신고센터가 만들어진다면 피해 당사자 뿐 아니라 목격자(제3자)도 신고할 수 있도록 신고 대상 폭도 넓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도 앞으로 보다 더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희롱 근절은 단순히 여성보호를 넘어 근로자 인격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많은 기업들이 이같은 의식이 부족하다”면서 “성희롱 및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사업주가 깨닫고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하는 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보니 정부가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과태료나 형벌을 높이는 등 기업에 자극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실효성 있는 성희롱 근절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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