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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지 말라
헌재의 결정문을 보면, 우선 재판관 전체의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사익추구를 지원한 것이 ‘헌법과 법률위배 행위’임을 인정한 뒤 ‘헌법수호 의지 없으므로 파면’에 이르는 징검다리로 ‘진정성 없는 사과’를 언급한 대목이 등장한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뒤 박 전 대통령이 사실을 은폐·축소·왜곡하려 한 언행에 대한 지적이다.
헌재는 결정문의 ‘피청구인을 파면할 것인지’ 부분에서 “1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아 진정성이 부족했다”며 “2차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 조사와 특별검사 수사를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신의 헌법과 법률위반 행위에 대해 국민을 상대로 진실성 없는 사과를 하고 국민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며 “헌법수호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법위배 행위”라고 결론 지었다.
이밖에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보충의견에서 박 대통령이 세월호 관련 해명이 객관적인 사실과 명백하게 어긋난다는 점을 조목조목 짚어내기도 했다.
이번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보충의견이다. 김이수·이진성 두 재판관은 보충의견을 통해 대통령의 국민 생명권 보장 의무를 명확히 했다. 두 재판관은 “국가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시의적절하게 조치해서 국가와 국민을 보호할 구체적인 작위의무를 부담한다”고 명시했다.
비록 무성의하게 세월호 참사에 대응한 행위를 명백한 탄핵사유로 볼 수는 없지만 대통령으로서 마땅히 수행해야할 업무에 불성실하게 대응한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잘못된 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직을 수행함에 있어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릇 국가의 지도자는 안전한 상황보다는 위험한 상황에 대해 훨씬 많은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이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분권하라
특기할 헌재 결정문은 안창호 재판관이 단독으로 내놓은 보충의견이다. “1987년 개헌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대통령 권력행사는 과거 권위주의적 방식을 크게 못 벗어났다”는 것이 안 재판관의 진단이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적 권력구조가 △비선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남용 △재벌기업과 정경유착 등 정치적 폐습을 낳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앙집권적인 대통령 중심주의를 개혁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게 안 재판관의 지적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대안으로는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책임총리제 등이 제시된다.
특히 안 재판관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권력공유형 분권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인용한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나오는 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플라톤은 2500년 전 ‘통치가 쟁취의 대상이 되면 동족 간 내란으로 비화해 시민을 파멸시킨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