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작용 생길라…'따로 노는' 한은과 시장

한국은행-금융시장, 국내경기 인식 등 차이
당국과 시장간 간극, 금융 불안정 등 부작용
'큰 형님' 미국 연준도 '양치기 소년' 불명예
  • 등록 2016-08-22 오후 2:49:32

    수정 2016-08-22 오후 2:49:32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은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은행과 시장이 따로 놀고 있다. 한은은 최근 부쩍 기준금리 동결 신호를 늘리고 있는데, 시장은 여전히 연내 인하를 보고 있다. 국내경기 인식부터 가계부채 해결까지 상당부분 다른 기류다.

이런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일견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책임을 따지자면 당국과 시장 모두에 있기도 하다. 다만 책임론보다 더 중요한 건 예기치 않은 금융불안정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안정의 중요성은 운전자가 잡은 운전대(정책당국)와 바퀴(실물경제)를 잇는 조향장치(금융시장)가 고장나면 자동차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큰 형님’ 격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선진국 중앙은행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여서 우려는 더 크다.

한국은행-금융시장, 국내경기 인식 등 차이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이번달 통화정책방향을 통해 국내경기에 대해 “소비 등 내수는 완만하나마 개선 움직임을 이어간 것으로 보이며 경제주체들의 심리는 다소 호전됐다”고 평가했다. 지난달보다 우리 경제를 보는 시각이 훨씬 밝아진 것이다. 경기가 반등하면 기준금리를 내릴 유인은 줄어든다.

최근 들어 한은이 집계한 기업경기실사지수와 소비자심리지수가 나아진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의 시각은 온도차가 느껴진다. 시장은 최근 나온 통계청의 2분기 가계동향을 주목하는 기류가 있다. 가계동향 통계를 보면, 지난 2분기 전국 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70.9%로 지난해 2분기보다 0.7%포인트 하락했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한은은 완만한 성장을 예상했지만 단기간 내 경기 개선을 기대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시장 다수는 여전히 기준금리 인하에 베팅이 쏠려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은은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를 유독 강조하고 있다. 거시적인 금리정책도 가계부채를 신경 쓰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한은 내부에는 “연내 추가 인하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다만 시장 일각은 가계부채 문제는 미시적인 대출규제로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책연구원 출신 금융권 한 인사는 “지난 금통위 때 이 총재가 가계부채를 아무리 얘기해도 채권금리는 ‘플랫(flat·변동이 없는)’이었다”고 했다. 시장이 가계부채를 매파(통화긴축 선호)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은 한 금융통화위원은 “채권을 운용하는 이들만 바라보고 통화정책을 하면 안 된다”고 했고, 한은 한 인사는 “상당수가 왜 채권 롱(매수) 포지션을 확대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 증권사 채권딜러는 “한은의 시장 소통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당국과 시장간 간극이 가져올 부작용이다. 통화정책은 통상 금융시장을 통해 생산과 물가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금융시장이 불안하면 통화정책의 파급경로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안정은 정책의 수단으로서 목적도 있지만 최근 시장이 워낙 커져 금융안정 자체가 목적이 된 경향도 있다”고 했다. 한은의 법률상 목적에 금융안정이 추가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본시장연구원의 황세운 박사는 “시장금리와 정책금리간 차이가 확대되면 금융시장에 들어온 참가자들이 그 차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거래활동이 위축되고 불확실성이 증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큰 형님’ 미국 연준도 ‘양치기 소년’ 불명예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연준 역시 시장과 소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장은 연준을 ‘양치기 소년’으로 부를 정도다.

지난달 연준의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이는 확인된다. 연준은 지난 6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처럼 바람을 잡았다가 결국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이유로 동결했다. 이후 7월 FOMC 성명서에서 “경제 전망에 대한 단기적인 리스크가 약해졌다”며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지만, 정작 시장은 시큰둥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이 계산한 연방기금금리 선물의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7월 FOMC 하루 전 19.5%였다. 그런데 연준의 인상 시그널 이후 오히려 18%로 낮아졌다.

금융권 한 고위인사는 “연준이 올해 금리를 올리긴 할 것 같다”면서도 “그건 경제지표 영향보다 ‘올해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스스로 언급한 걸 지키기 위한 신뢰성(credibility) 측면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면 시장의 신뢰는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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