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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해발굴은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 희생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첫 유해 발굴이다. 진실화해위는 유해 수습을 앞두고 한국전쟁 당시 집단학살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이날 오전 11시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이번 유해 발굴에서 최소 40구의 유해가 확인됐다. 유해(유골)는 폭 3m, 길이 14m 방공호를 따라 빽빽하게 매장된 채 온전한 형태로 발굴됐다.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건장한 남성으로서, 무릎이 구부러지고 앉은 자세 형태를 보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아산 부역혐의자로 학살당한 후 좁은 방공호에 바로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번 유해 발굴지는 1950년 10월4일 온양경찰서가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매일 밤 1~2회에 걸쳐 40~50명씩 트럭에 실어 성재산 일대와 온양천변에서 학살해 시신을 유기한 곳이다.
또 1951년 1·4후퇴 시기인 1월 초에는 도민증을 발급해 준다며 배방면사무소 옆 곡물창고 2개와 모산역 부속창고에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와 가족들을 잡아 가둔 후 한 집에 남자아이 1명만 제외하고 수일간 수백명을 집단학살하고 유기한 지역이기도 하다.
앞서 1기 진실화해위는 관계자 진술과 기타 자료를 토대로 아산시 일대에서만 총 8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2009년 5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아산시도 2018년 자체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배방읍 뒷터골 폐금광 터에서 어른 150명과 어린이 58명 등 총 208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아산 부역혐의 희생자들이 가족 단위로 살해되고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그간 유해 수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인근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산96-4)에서도 유해 발굴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