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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이데일리 이종일 기자] 대한항공 총수 일가가 수년 동안 해외 명품을 밀수입하는 과정에 회사 직원들까지 동원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조양호(69) 대한항공(003490) 대표이사 회장의 아내인 이명희(69)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녀 조현아(44)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해외에서 구입한 명품 등을 세관 신고없이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대한항공 해외지점을 주로 이용했다.
범행에 대한항공 해외지점 직원 등 동원
인천본부세관은 지난 4월부터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관세법 위반(밀수입) 혐의를 수사해 8개월 만인 지난 26일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 차녀 조현민(35) 전 대한항공 전무를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전 이사장 등 세 모녀는 지난 2009년 4월부터 9년여 동안 미국, 유럽, 일본, 홍콩 등에서 해외 명품, 생활용품 등 1061점(시가 1억5000만원 상당)을 260차례에 걸쳐 밀수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이 전 이사장은 해외 유명 과일과 그릇 등을 밀수입하면서 대한항공 해외지점을 이용했다. 그는 해외지점에 물품 구매를 지시했고 해당 물품을 대한항공편으로 국내에 반입한 뒤 회사 물품인 것처럼 속여 세관 신고 없이 손에 넣었다. 관세는 한푼도 내지 않았다. 밀수 횟수는 모두 46차례(물품 시가 3700만원 상당)였다.
장녀 조 전 부사장도 대한항공 해외지점을 이용했다. 조 전 부사장은 해외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구입한 물품을 대한항공 해외지점으로 배송받은 뒤 이 물품을 대한항공편으로 국내에 들여와 회사 물품인 것으로 위장해 세관 신고를 피했다. 관세를 내지 않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 전 부사장의 밀수에는 A·B씨(56·대한항공 직원)가 협력했다. 범행은 213차례(9900만원 상당) 지속됐다.
큰 물건은 대한항공 수입으로 ‘눈속임’
이 전 이사장과 조 전 부사장은 부피가 작은 물품은 밀수로 몰래 들여왔지만 소파, 탁자, 욕조 등 부피가 큰 물품은 세관 직원의 눈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해외에서 물품을 수입한 것처럼 속여 국내로 들였다. 두 모녀는 지난 2013년부터 4년여 동안 부피가 큰 가구 등 132점(시가 5억6000여만원 상당)을 30차례에 걸쳐 수입했고 관세 등 2억2000만원을 내지 않기 위해 수입자를 본인 명의 대신 대한항공으로 바꿔 세관에 신고했다. 관세 등 2억2000만원은 대한항공 회삿돈으로 냈다.
이 전 이사장은 27차례(물품 시가 5억3600만원 상당)에 걸쳐 허위 신고했고 조 전 부사장은 3차례(3100만원 상당) 수입자 명의를 바꿔 신고했다. 차녀인 조 전 전무는 프랑스 파리에서 선물받은 반지·팔찌 등 19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1차례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국내로 반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세관 관계자는 “이 전 이사장 등이 밀수하면서 구입한 물품 값은 모두 당사자가 지급했다”며 “범행은 주로 대한항공 해외지점을 통해 이뤄졌다. 꽤 많은 회사 직원이 동원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이어 “A·B씨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범행 내용을 모르고 이 전 이사장 모녀의 지시로 물품을 국내로 보냈기 때문에 입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