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반(反) 트럼프’ 결집이 심상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77) 전 대통령의 재선만은 막아야 한다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부호가 공화당의 다른 후보에게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 주한미군 철수 등 한반도 지형과 관련한 과격 발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어, 한국 입장에서도 이는 초미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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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만은 절대 안 돼”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세계 최대 비즈니스 네트워크 사이트 링크드인의 공동 창업자인 리드 호프먼은 최근 공화당 소속 니키 헤일리(51) 전 유엔 대사의 선거 운동을 돕는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에 25만달러(약 3억3000만원)를 기부했다.
호프먼은 민주당에 거금을 지원해 왔던 큰 손이다. 그런 그가 공화당 대선 주자를 돕는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다. 호프먼 측은 자신이 조 바이든(81) 대통령의 재선을 적극 지지하는 민주당 쪽 인사라는 점에서, 기부금을 받을 것인지 슈퍼팩에 미리 확인까지 하고 돈을 전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1위를 달리는 가운데 그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전략인 것이다. NYT는 “호프먼은 반 트럼프 후보들에게 재정적으로 후원해 왔다”며 “미국 재계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막기 위해 헤일리 전 대사를 지원하자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헤일리 전 대사는 ‘트럼프 대항마’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인사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훨씬 젊은 50대 초반이고, 공화당 내에서 유일한 여성 대권 주자다.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낙태 등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공화당 후보 중 가장 전향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해리스폴이 지난달 27일부터 이번달 1일까지 진행한 가상 양자대결 여론조사에 따르면 헤일리 전 대사(41%)는 바이든 대통령(37%)에 앞설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다만 바이든-트럼프 양자 대결(40% 대 47%)과 비교하면,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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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철수 등 불확실성↑
‘좌충우돌’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공화당 내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의 딸인 공화당 소속 리즈 체니 전 연방 하원의원은 제3당 후보로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체니 전 의원은 WP와 만나 “트럼프의 공화당 장악으로 미국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며 “국제적으로도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존 외교 문법을 깨는 ‘트럼프 리스크’는 한반도 지형의 근간까지 뒤흔들 변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잇단 주한미군 철수 언급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인 마크 에스퍼의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를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변의 만류에도 주한미군 완전 철수에 대한 생각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실제 재임 중 한국을 향해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4월 한미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워싱턴 선언’ 역시 원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의 자체 핵 무장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동맹국 방어를 줄일 테니, 스스로 방어하라는 게 그의 굵직한 기조인 것이다. 이는 곧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국 독자 핵무장론을 잠재운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