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스프린터의 기질과 하드웨어를 갖춘 ATS-V는 그렇게 곁에서 머물다 떠나갔다.
현재 한국 시장에서 가장 평가 절하를 받는 브랜드가 있다면 캐딜락이 아닐까? 전쟁이 끝난 후 한반도는 잠시 캐딜락에 열광했던 시기가 있다. 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한국을 수호한 미국의 자존심이라는 후광 덕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초, 캐딜락의 가치는 어느새 거품처럼 사라졌고 되려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의 주요 브랜드가 한국 수입차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최근의 캐딜락은 독일 브랜드에 비견될 수준은 아니지만 점차 성장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와 이를 위한 캐딜락의 전략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상태지만 어찌됐든 캐딜락은 한국에서 꽤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 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실제 캐딜락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은 2013년 대비 68%의 판매 성장을 이뤄냈다고 밝혔고, 2015년에는 2014년 대비 72%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 2016년 캐딜락의 첫 번째 출시 작품으로 한국 땅을 밟은 ATS-V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캐딜락은 언제나 독일 산 경쟁 모델을 압박하지만 나사 하나 정도 빠지거나 크게 뒤뚱거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면 이번 ATS-V는 경쟁 모델 M3의 뺨을 시원하게 후려 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ATS-V의 손은 대체 얼마나 매운 걸까?
다만 캐딜락 브랜드 내에서 가장 미움 받는 BLS의 빈자리를 채우는 콤팩트 모델 ATS를 기반으로 개발했고, 4기통 엔진의 도입 그리고 유래 없는 콤팩트 V 시리즈라는 점에서 ATS-V는 아직 캐딜락 내에서 서자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여느 디자인 요소라도 ‘캐딜락’답지 않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서자라도 경쟁력을 갖췄다면 눈 여겨 볼 수 밖에 없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2세대 CTS 쿠페를 사랑한 만큼 ATS-V 출시에 있어 쿠페 모델의 도입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 이미 ATS 쿠페가 판매되고 있는 만큼 가격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ATS-V 쿠페의 도입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올 상반기 ATS-V의 출시를 앞두고 쿠페 모델 도입 가능성에 희망을 걸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ATS-V는 세단만 출시되어 아쉬움이 뒤를 이었다.
ATS-V 중에서 가장 욕심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시트. 다양한 방향과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시트 덕분에 최적의 드라이빙 포지션을 추구할 수 있으며 이는 주행 중 완벽한 일체감과 편안함 그리고 나아가 사고 시 안전까지 보장한다. 가능하다면 ATS-V의 시트만 따로 소유하고 싶을 정도의 만족감을 자아낸다.
BMW M3를 겨냥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ATS-V의 V6 3.6L 트윈터보는 최대 출력 470마력과 61.2kg.m의 토크를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단 3.8초 만에 가속해 M3를 0.3초의 차이로 따돌리고 최고 속도는 근래 수입된 고성능 차량에서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302km/h에 이른다. 수치로만 본다면 경쟁 모델인 BMW M3, 메르세데스 AMG C 63 AMG 등을 압도하는 수치인데 가장 저렴한 가격표를 달았다.
다른 차량이라면 연신 계기판에 노면에 미끄러지고 있음을 경고하는 알람이 뜰 법한데 ATS-V는 어지간히 괴롭히지 않는 이상 평온, 그 자체를 유지한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미 경쟁 모델을 앞지르는 경이로운 가속력을 선보인다. 해외에서는 메르세데스 AMG C 63 S로 ATS-V를 꺾었다고 하지만 S는 일종의 변칙 모델이 아닌가?
강력한 출력을 마음껏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마법은 MRC 외에도 브레이크에 숨겨져 있다. 전륜과 후륜에 각각 6피스톤, 4피스톤 브렘보 브레이크 시스템이 장착되어 470마력의 출력을 손쉽게 다루는 여유가 돋보인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고르게 분배된 브레이크의 답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교하고 편안한 제동을 보장한다.
한편 캐딜락 ATS-V의 시승을 마치고 인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연비를 체크해보기로 했다. 드라이빙 모드는 투어로 택했고, 주행 코스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통해 서울로 이동했고, 강원도에서 경기도까지 오는 과정은 시원스럽게 이어졌으나 양평에서부터는 간간히 지체가 이어지곤 했다. 그렇게 한강대교 중간, 노들섬에 차량을 세워 연비를 확인해보니 12.2km/l(주행 거리 180.6km / 평균 속도 56.9km/h)의 평균 연비가 측정되어 출력을 감안했을 때 만족스러운 수치라 판단됐다.
캐딜락 ATS-V에 담긴 모든 요인들을 설명하고 이를 평가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안락하면서도 강력한, 그러면서도 믿을 수 있는 주행은 물론 실내 품질이나 안락함은 완벽에 가깝다. 다만 붉게 물든 계기판, 알칸타라로 도배된 쉬프트 레버와 스티어링 휠 그리고 고성능 모델에 적합한 레카로 버킥 시트를 제외하면 캐딜락 ATS과의 차별점을 담아내지 못한 점은 고성능 모델에 대한 만족도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ATS 자체가 워낙 우수했던 만큼 특별히 더할 것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