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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소나무는 홀로 서 있어 돋보이지만, 자작나무는 눈보라 차디찬 곳에서 무리지어 아름다운 나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독야청청 소나무보다 짧게 어우러져 사는 자작나무 숲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종대왕의 나라사랑 대사가 공연이 끝난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창씨 개명을 강요받으며 이름조차 잃어버렸던 시절에도 한글의 위대함과 그 우수성을 알리고 민족정기를 살리려 애쓰는 한글 학자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1921년 겨울 최현배, 이극로, 김윤경 등이 주축이 돼 조선어연구회가 설립되고, 1931년 조선어학회로 변경돼 ‘조선어대사전’ 편찬이 나오면서 그 대단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의 이름은 한글의 ‘한’자와 샘이 깊은 물의 ‘샘’을 활용해 한새미로 지어졌다. 한새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글이 겪어야 하는 수난과 가슴앓이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만다. 어느 날 자신을 데려다 준 일본인 미와 경부와 순경에게 조선어학회 정보를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에 팔아버리며 조선어학회 수난과 역정의 세월 속에 중심이 되어 성장하는 한새미. 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더욱 큰 고통으로 살아가는 가슴앓이 운명을 겪게 된다.
한새미의 딸이 성장해서 엄마를 회상하며 그려낸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본 연극은 2013 독립운동사 연극공연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영상과 연극의 만남, 신·구 연기자의 조화로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피아노 선율의 감미로움 속에 작품의 시대적 어둠과과 기다림의 환희가 교차하는 것도 관람 포인트다. 음악의 정교함과 더불어 그 속에 독립과 미래를 선을 통해서 날카롭게 제시하는 연출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