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공연] 영상·연극의 만남, 신·구배우 조화 인상적

- 리뷰
연극 '샘이 깊은 물'
일제강점기 한글학자의 애환
주인공 딸의 눈으로 바라봐
  • 등록 2013-11-18 오후 3:57:54

    수정 2013-11-18 오후 3:57:54

연극 ‘샘이 깊은 물’ 한 장면(사진=씨어터오).


[윤봉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소나무는 홀로 서 있어 돋보이지만, 자작나무는 눈보라 차디찬 곳에서 무리지어 아름다운 나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독야청청 소나무보다 짧게 어우러져 사는 자작나무 숲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세종대왕의 나라사랑 대사가 공연이 끝난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창씨 개명을 강요받으며 이름조차 잃어버렸던 시절에도 한글의 위대함과 그 우수성을 알리고 민족정기를 살리려 애쓰는 한글 학자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이야기다. 1921년 겨울 최현배, 이극로, 김윤경 등이 주축이 돼 조선어연구회가 설립되고, 1931년 조선어학회로 변경돼 ‘조선어대사전’ 편찬이 나오면서 그 대단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글 발표 567주년인 올해, 시계를 거꾸로 돌린 1932년 조선어학회 사무실에 일본 순사가 버려진 한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갈 곳 없는 그 아이에 대해서 버려진 아이, 곧 한글을 구하고자 하는 학자들이 조선의 한 아이조차 구해내지 못하면서 무엇을 구할 수 있겠는가란 자조적인 목소리로 여자아이와 한글의 운명이 같음을 암시한다.

아이의 이름은 한글의 ‘한’자와 샘이 깊은 물의 ‘샘’을 활용해 한새미로 지어졌다. 한새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글이 겪어야 하는 수난과 가슴앓이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만다. 어느 날 자신을 데려다 준 일본인 미와 경부와 순경에게 조선어학회 정보를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에 팔아버리며 조선어학회 수난과 역정의 세월 속에 중심이 되어 성장하는 한새미. 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면서 더욱 큰 고통으로 살아가는 가슴앓이 운명을 겪게 된다.

자신이 일본 경찰의 스파이임을 알아버린 어느 날, 그 사실이 무서워서 스파이 생활을 계속했지만 이극로 선생의 수첩만큼은 끝까지 지켜내고자 맞선다. 이런 소녀의 소망은 독립이요, 사랑이요, 조선어학회가 추구했던 조선어 큰사전이 만들어진 이유와 나아갈 방향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세계적으로 우수한 한글이 사전 하나 없다는 것에 부끄러워했다는 한글학자 이극로와 조선어대사전을 만들겠다는 조선어학회 학자들의 열정과 소망은 곧 한글 사랑이며, 우리나라의 자주독립이요, 미래를 향한 우리의 세계화 정신이었다

한새미의 딸이 성장해서 엄마를 회상하며 그려낸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본 연극은 2013 독립운동사 연극공연시리즈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영상과 연극의 만남, 신·구 연기자의 조화로운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내면 깊숙이 파고드는 피아노 선율의 감미로움 속에 작품의 시대적 어둠과과 기다림의 환희가 교차하는 것도 관람 포인트다. 음악의 정교함과 더불어 그 속에 독립과 미래를 선을 통해서 날카롭게 제시하는 연출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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