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人]류현정 씨티銀 부장 "환율, 추가 하락 압력 있어"

"역사적으로 하반기 환율이 더 낮아"
외환딜러의 철칙 "시장과 싸우지 말고, 시장을 읽어라"
  • 등록 2014-04-16 오후 2:49:55

    수정 2014-04-16 오후 4:35:18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시장하고 싸워서 절대 이길 수 없다. 시장은 항상 거기에 있고, 시장은 항상 그 나름대로 논리를 갖고 있다. 다만 내가 시장의 메인 컨센서스를 못 읽었을 따름이다.” 21년차 류현정 씨티은행 외환파생운용부장이 말하는 외환딜러의 철칙이다. 현직 딜러로선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그에겐 한 우물만 오래 판 사람에게 느껴지는 강한 내공이 있었다.

컴퓨터 수십 대가 뿜어내는 열기로 사무실 공기는 후끈했다. 잠깐만 앉아있어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듯 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피 튀기는 승부가 펼쳐지는 곳, 류 부장이 일하는 곳이다. 지난 주 달러-원 환율이 5년 8개월 만에 1050원 밑으로 하락하고, 장중 환율이 이틀 새 20원이나 떨어졌다(원화 강세). 그 주 마지막 승부가 있었던 11일, 서울 중구 다동 씨티은행 본부에서 그를 만났다.

“환율 더 떨어진다”

류현정 씨티은행 외환데스크 외환파생운용부장
그는 최근의 환율 하락세에 대해 “현재 환율이 5~6년 전으로 회귀한 것”이라며 “거꾸로 얘기하면 비교적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최근 2~3년 크게 증가됐고, 외국인 자금이 순유입으로 바뀌는 등 환율 하락요인이 많았다. 하지만 1050원이 계속 지지되면서 ‘1050원이 지켜질 것’이란 믿음이 행동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시장에선 외환당국이 1050원을 지키려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지만, 그는 “(외환당국이) 언제 얼마나 막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대외적으로 1050원 아래로 테스트할 때마다 미국 테이퍼링 및 기준금리 인상 이슈,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 불안, 북한 등 지정학적 위험 등의 악재가 하락을 막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악재들이 지속되면서 시장이 피로감을 느꼈고, 그 만큼 반응이 둔해졌다.

그는 “외국인들도 (달러를) 사는 쪽보다 파는 쪽이 많다”며 “주식, 채권으로 자금유입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원화 강세에 대한 기대가 많아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머징마켓이나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에 원화가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을 것이란 판단이 컸다. 그로 인해 외국인들은 원화를 팔았지만, 최근 들어 반대로 원화를 사면서 오버헤지된 부분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는 “1050원이라는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지면 반대로 그 레벨 정도가 저항선으로 작용한다”며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 거주자 외화예금은 석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환율이 하락하면 좋겠다는 사람들보다 올라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달러를 팔 물량이 그 만큼 많단 얘기다.

그는 “역사적으로 봐선 상반기 환율이 90% 이상 하반기보다 높았다”며 “경상수지 흑자는 3월이 지나면서 더 회복되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상반기보단 하반기에 더 적극적이라 자금유입 여력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슈가 본격화되더라도 별로 빠져나갈 자금이 없다.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회복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달러 매수-원화 매도 거래 번번이 실패”

원화는 안전자산일까. 지난해 초부터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이러한 질문이 심심찮게 나온다. 원화는 흔히 ‘프락시(proxy) 헤징 통화’ 또는 ‘이머징 마켓의 리딩 커런시’로 불린다. 이머징 통화를 거래할 때 위험을 줄이기 위해 비슷하게 움직이면서도 유동성이 풍부한 원화를 교차 헤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과거 원화의 변동폭을 키우는 원인이 됐었다. 원화는 달러 유동성이 다른 이머징 통화에 비해 좋지만, 외부 충격이 있을 때는 이머징 통화와 함께 약세로 간다. 유동성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매도되고, 변동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대외 여건이 악화됐지만 변동폭 자체가 좁아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만큼 원화 체력이 단단해졌다는 것.

그는 “원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매수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이런 거래 패턴이 실패했다”며 “가장 크게 실패했던 것이 지난해 8월(미국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이머징 통화가 약세를 보였으나 원화는 비교적 흔들림이 적었다). 올 2, 3월에도 달러 매도, 원화 매수했던 역외 세력들은 다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그는 “원화는 시장 변동성, 자산 안전성 등을 보면 이머징 국가와 선진국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급격한 환율 하락에 성공적인 베팅을 했을까. 그는 “상당한 공방을 거치면서 1050원 밑으로 갈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쉽게 하락했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선 적극적으로 환율 하락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트레이더에게 돈을 벌고 못 벌고 보단 얼마나 뷰 테이킹(view-taking)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시장 컨센서스, 리스크 온·오프→달러 강·약세”

미국의 고용지표가 개선됐다면 환율은 오를까? 떨어질까? 정답은 오를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외환시장은 같은 재료가 어느 날엔 하락 요인이 됐다가, 다음 날엔 상승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는 “과거엔 달러-원과 달러-엔이 반대로 움직였다. 엔화의 테마 자체가 안전통화로서의 위치가 강조되면서 엔화가 강세면 원화는 약세였던 것이다. 시장을 움직이는 전체적인 틀이 리스크 온(위험선호)이냐, 오프냐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엔 달라졌다. 그는 “리스크 팩트는 희석되고 달러가 강세냐, 약세냐에 따라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며 “달러에 대해 엔화도 원화도 같이 움직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시장의 메인 컨센서스가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고 잘 읽어내는 것이 트레이더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은..`기도`”

그는 위기를 세 번 겪었다. 트레이더 3년차, 1996년 8월 16일. 하루에 많으면 2원, 3원 움직이던 환율이 그 날부터 나흘 연속 하루에 10원씩 급등했다. 그는 ‘일대 대사건’이라고 표현했다. 글로벌 달러가 약세에서 추세적으로 강세로 바뀌었다. 몇몇 외국계 은행들은 뒤바뀐 포트폴리오에 적응하기 위해 달러를 어마어마하게 매수했다. 그는 “처음 환율이 폭등할 때 나는 숏(매도)이었다. 그러나 기존 관행을 못 버리고 숏을 더 냈다. 그리고 트레이더로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기도하지 말고 시장의 메인 컨센서스를 파악해 가격변동에 대응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어 “이 때 개인적으로 많이 컸고, 시장이란 시장을 제대로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두 번째는 외환위기다. 그는 “환율이 200원씩 폭등했다. 사회적으로 트레이더라는 직업이 조명을 받고, 은행에서도 비중이 커졌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2008년 금융위기. 그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살아남았던 경험이 2008년에 좋은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항상 새로운 게임을 좋아한다”며 “주어진 자금 안에선 매일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인생이나 다른 업무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에서 판돈을 주고 게임을 하라는 것 아니냐”며 “이 일은 즐기지 못하면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나보다 높은 선배들이 더 큰 리스크를 운영하는 것을 보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용기를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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