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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수년째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직장인 이모씨. 그는 최근 전세 만기를 몇 달 남기고 집 주인으로부터 “집을 팔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대책 때문에 다주택자인 집 주인이 집을 내놓았을 것이라는 게 이씨의 추측이다.
그렇게 이씨는 A 은행을 찾아 대출 상담을 받았다. 이참에 큰 맘 먹고 2억원 이상 빌려 집을 사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출금리 자체도 불과 몇 년 전보다 크게 올랐고, 원금도 동시에 갚아야 했던 탓이다. 넉넉잡아 2억5000만원 대출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매달 내야 할 돈은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추후 대출금리가 상승하면 더 불어날 가능성도 있다.
A 은행 창구 직원은 “정부 규제로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그런 가계대출은 찾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씨는 “전세로 좀 더 살아야 할지, 그래도 무리해서 집을 사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은행도 비은행도 “대출 조인다”
‘가계대출 빙하기’가 오고 있다. 은행권과 제2금융권 모두 설문조사를 통해 “가계대출을 조일 것”이라고 답했다.
대출태도지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대출금리를 높이는 등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답한 금융기관이 완화하겠다고 답한 곳보다 많다는 의미다.
올해 3분기 가계주택에 대한 실적치는 -40까지 하락했다. 지난 2007년 1분기(-41) 이후 10여년 만에 가장 낮다. 3분기 가계대출의 문턱을 바짝 높였던 국내은행이 4분기에도 그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가계주택 대출태도지수는 2015년 4분기(-13) 이후 9분기째 마이너스다. 2005년 3분기 이후 3년여간 마이너스가 이어진 이후 10여년 만에 대출 빙하기가 찾아온 것이다.
전·월세 자금과 마이너스통장 같은 ‘가계일반’ 대출도 빡빡해질 전망이다. 4분기 가계일반에 대한 국내은행의 대출태도지수 전망치는 -20까지 하락했다. 3분기 실적치는 -7. 이 역시 2015년 3분기(-3) 이후 2년반째 마이너스 추세다.
박완근 한은 은행분석팀장은 “문재인정부의 8·2 부동산 대책과 이번달 발표 예정인 가계부채 대책으로 대출태도가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점점 멀어지는 ‘내 집 마련’의 꿈
비(非)은행권도 마찬가지다. 상호저축은행의 4분기 대출태도지수 전망치는 -19다. 3분기 실적치(-15)보다 더 낮다. 상호저축은행은 시중은행에서 대출이 막히면 주로 찾는 곳이다. 그 외에 상호금융조합(-40)과 생명보험사(-17)의 전망치도 떨어졌다.
이는 시중은행은 물론 비은행권의 돈줄 조이기가 유례없이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을 가능하게 한다. 한은 관계자는 “비은행도 정부의 대책 영향에 가계를 중심으로 대출 문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가계의 대출 수요까지 죽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4분기 국내은행의 가계일반 대출수요지수는 7로 나타났다. 최근 수치보다 낮긴 하지만, 전·월세 자금 수요는 여전하다는 의미다.
비은행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상호저축은행의 4분기 전망치는 6이다. 사상 최고다. 신용카드사도 6으로 집계됐다. 두 기관 모두 전기보다 상승했다. 시중은행의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 실수요자마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어렵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이번 조사는 국내은행 15개, 상호저축은행 16개, 신용카드사 8개, 생명보험사 10개, 상호금융조합 150개 등 199개 금융기관 여신업무 총괄담당 책임자를 대상으로 8월25일~9월12일 전자설문 방식으로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