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과 달리 사람이 살면서 겪는 변화가 기껏해야 계절이 바뀌는 것밖에 없던 시절에는 연륜에서 우러난 지식과 경험이 문제를 푸는 슬기의 원천이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했고, 그런 이의 눈에 늘 어설퍼 보이는 나이 적은 것들은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대상이었다.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라는 구절에 나타나듯, 우리 옛말에서 “어리다”는 곧 “어리석다”였다. 현대어에서 의젓하고 진중하다는 뜻을 지닌 낱말 “점잖다”의 어원은 “젊지 않다”이다.
그러나 근대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는 것 없이 모든 게 그저 되풀이될 따름이던 근대 이전에야 나이에서 얻은 경험이 중요했지만, “견실했던 모든 것들이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근대에는 그런 경험이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한다. 빠른 변화의 시대일수록 중요해지는 호기심과 적응 능력은 오래 산 이들로서는 점점 더 갖추기 힘들어지는 덕성이다. 나이 들며 얻은 경험은 거추장스러운 대접을 받는다.
여기서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흔히 까마득한 옛날로 느껴지는 1988년에 나온 이탈리아 영화 <누오보 시네마 파라디소>이다. 정확한 번역은 <새 천국영화관>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시네마 천국>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한 읍에 있는 영화관을 회고하며 옛 향수를 자극하는 이 영화에 공감하며 웃고 눈물지었던 청춘들이 지금은 중장년이 되어 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두 주인공인 늙은 상영기사 알프레도와 영화에 푹 빠진 꼬맹이 토토는 인연을 이어간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상영기 돌리는 법을 가르쳐주니 둘은 스승과 제자이겠지만, 초등학교 졸업 검정시험장에서 알프레도가 답을 보여달라고 토토에게 애원하는 장면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둘은 친구이다. 살 날이 산 날보다 적은 알프레도와 10대 소년 토토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은 다름 아닌 우정이다.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큰 세상으로 나아가 꿈을 펼치라면서 귀향 생각은 꿈에서라도 하지 말라고 귓속말로 속삭인 뒤 단호히 토토의 등을 떠밀어 로마행 기차에 태우는 장면은 언제나 가슴 찡하다.
△류한수 (상명대 교수, 유럽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