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최한나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금융기관장들을 만났습니다. 지난해 6월18일 오찬간담회 이후 꼭 1년만의 회동입니다. 이날 회동은 탄핵 기각 이후 경제분야에 중점을 두고 있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는게 청와대측의 설명입니다. 신불자 문제 등 당장 풀어야 할 현안을 놓고 대통령과 금융기관장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경제부 최한나 기자가 짚어봅니다.
대통령이 은행장들에게 숙제를 던졌습니다. 수익성과 주주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지만 공공성 때문에 금융회사가 아닌 금융기관으로 불리어 온 은행들에게 `앞으로 어디에 주안점을 둘 것인가` 고민해 보라는 주문입니다.
복귀 후 처음으로 금융기관장들과 얼굴을 맞댄 대통령은 먼저 위기에 대한 책임론부터 거론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여러 문제들에서 금융기관들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지금 겪고 있는 가계대출과 신용불량자 문제도 결국 금융권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97년 위기에 어느정도 원인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금융쪽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는게 대통령의 시각입니다.
이 같은 대통령의 지적에 금융기관들은 억울할 지 모릅니다. 신불자 문제 해결이나 중소기업 살리기를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올 초 LG카드 사태 해결 때를 떠올려 보면 은행들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당시 채권기관들은 주주이익이나 은행 내부사정을 이유로 한치의 양보없이 각을 세웠었습니다. 각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융시장 전체를 볼모로 잡아 벼랑끝 줄다리기를 서슴지 않았었지요. 덕분에 금융시장은 `LG카드발(發) 금융대란`을 우려하며 은행들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대통령은 지금같은 금융시스템 하에서 과연 제2, 제3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한 은행이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모든 은행이 회수에 팔을 걷어부치고, 또다른 은행이 수수료를 올리면 죄다 줄줄이 올려버리는 이른바 `쏠림 현상`을 그 이유로 들었습니다.
IMF때 기업에 부실징후만 감지됐다 하면 너도나도 대출을 회수해 위기를 자초하고, 결국 전체적으로는 더 큰 손실을 봤던 선례를 거론한 것입니다.
이어 대통령은 "은행별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지만 동종 업계가 직면한 시스템적 리스크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며 각자 수익을 내는데 급급해 서로를 경쟁 상대로만 여기기 보다는 함께 논의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은행도 시장원리에 따라 가동되는 `회사`인만큼 수익성 추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은행권 공통의 현안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응해야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또 필요하다면 정부의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혀, 금융권내 자율적 해결이 안되면 정부가 개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견도 내놨습니다. 자율적 해결이 우선이지만 안되면 정부가 나설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결국 행장들은 오랜만의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난해한 숙제거리만 안고 돌아온 셈입니다. 경영상 애로사항을 털어놓거나 당면한 어려움을 해소해달라는 요구는커녕 오히려 공동대응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항상 말로는 협력과 상생을 외치면서도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갖가지 핑계로 발을 빼온 금융기관들이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대통령의 지적 때문이 아닌 `우리나라 경제 회생`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