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공동락기자] 금요일 오후. 모두가 "가자. 집으로 산으로!"를 외치며 가방을 싼다.
최근 금융기관들의 주5일제 근무가 정착하면서 여의도, 종로, 강남 등 금융기관 밀집지역의 금요일 저녁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무박 3일 해외여행에서부터 스위트홈을 외치며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까지. 물론 덕분에 주말 식당가 분위기는 썰렁하지만.
◇ 어느 채권 애널리스트의 금요일 오후
그러나 A기관 B씨의 발걸음은 이들과 정반대다.
"그냥갈까, 간단하게 한술뜬 뒤 정리하고 갈까" B씨는 오늘도 갈등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인근 지하식당에서 일단 허기를 달랜다.
B씨는 올해로 채권 분석을 담당한지 5년차가 되는 중견 채권 애널리스트. 주식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엷은 선수층으로 이미 시장에는 상당히 이름을 날린 인물이지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유명세와는 거리가 멀다.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꺼리만 늘어요" 채권 애널리스트들이 내놓는 넋누리의 첫마디. 유명세를 타고 이름을 언급되면 될수록 챙겨야 할 사람, 일이 늘어간다. 더구나 바닥이 좁아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채권시장에서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B씨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서둘러 식사는 마친 B씨는 다시 회사로 들어간다. 다음주 전망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다. 이번주 거래 내역과 시장의 상황을 체크하며 방향성을 정하고 기술적 분석을 더해 금리가 움직일 범위를 추정한다.
물론 중간 과정에서 체크해야 할 변수들도 많다. 우선 한국시장 자체의 수급 여건, 경제지표는 물론이고 미국의 흐름도 빼놓을 수는 없다. 또 각종 정치, 경제적 변수까지 더해서 생각하면 학창시설 수학시간은 저리 가라다.
"아뿔싸" B씨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터뜨린다. 오늘밤 매월 첫째주 금요일 발표되는 미국의 월간 고용지표가 예정됐기 때문이다.
최근 채권관련 애널리스트들이 가장 눈여겨 볼 변수는 미국의 시장과 경제지표. 전세계적으로 금융시장이 동조화되는 경향은 채권시장도 결코 예외로 내버려 두지 않았고 미국 시장의 움직임 체크는 채권 애널리스트들의 필수적인 일과가 됐다.
B씨는 하던 일을 멈추고 컴퓨터 전원을 내린다. 미국 지표가 반영되지 않는 주간 전망보고서는 사실상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 정문을 나서는 B씨는 어느덧 주변이 어두워졌음을 실감한다. 겨울이 지나고 해가 많이 길어졌지만 밖이 환할때 퇴근한다는 것은 역시 사치라고 절감한다.
집에 도착해도 관심은 별반 다르지 않다. 통신이나 방송을 통해 미국 지표를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마음이 편하다. 마치 스포츠 매니아들이 다음날 아침 결과를 뻔하게 확인할 수 있음에도 밤을 새워 TV를 시청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일단 지표를 확인한 B씨는 긴급히 아까 작성했던 보고서 초안을 꺼내들고 이리 저리 내용을 수정한다. 오늘은 그야말로 예상하지도 못했던 고용 서프라이즈. 예상치도 못한 지표 탓에 아예 보고서를 다시 만드는 수준이다.
대략 정리를 하고 나니 어느덧 시계는 새벽 1시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야 잠자리도 편하다.
다음날 오전 11시. 오랜만에 늦잠을 즐긴 B씨는 보고서를 완성하고 이메일 주소록에 올라있는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낸다. 비로소 때늦은 주말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상은 현재 활동중인 채권 애널리스트들의 생활상을 종합, 편집해서 가상으로 꾸민 스토리다. 비록 하루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주중 생활 역시 금요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 채권 애널리스트는 주식 애널리스트들이 부럽다
현재 시중에서 활동중인 채권 애널리스트들은 대략 30여명.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주식 애널리스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적은 숫자다.
문제는 적은 인력의 규모 만큼이나 돌아오는 보상도 미약하다는 것. 주식 애널리스트의 경우 업종에 따라 구분은 있지만 어느 정도 인정받고 스카웃이라는 절차를 몇번 거칠 경우 받게되는 몸값은 도시 평균 근로자들의 몇 배를 족히 넘어선다.
반면 채권의 경우는 일부 스타급 선수들 2~3명을 제외할 경우 직급에 비례하는 수준이다. 대리면 대리, 과장이면 과장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유명해봐야 빛좋은 개살구라는 자조가 그래서 나온다.
대우가 불만스럽지만 그렇다고 딱히 따질 근거도 미약하다. 채권시장 보고서가 이제는 누구나 공짜로 받아 볼 수 있는 `공공재`가 돼버린지 오래여서 품을 많이 들여도 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문이 늘어도 보고서 질이 좋아서라고 주장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C투신의 D 채권 애널리스트는 "채권보고서를 누구나 당연히 받는 것이라고들 생각한다"며 "방향성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도움은 보고서를 통해서 하지만 정작 수입과 직결되는 주문은 해당 애널리스트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기관에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