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북한만 남았다"

  • 등록 2003-12-22 오후 5:09:59

    수정 2003-12-22 오후 5:09:59

[edaily 황현이기자] 지난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정상에 오른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편은 마치 미국 정부의 승승장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같습니다. 반지를 인연삼아 결탁한 다국적·다종족 원정대가 멀리 동쪽에 자리를 틀고 있는 악의 세력 사우론을 절멸하기 위한 여정에 나서 마침내 임무를 완수한다는 내용을 그린 이 영화는 "악의 축"을 하나씩 제거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성과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같은 줄거리도 한국에 오면 맥락이 사뭇 달라집니다. 국제부 황현이 기자가 착잡한 심경을 전합니다. "불량국가"들이 미리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속속 백기를 들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생포 사실이 확인된 데 이어 18일에는 이란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부속 의정서에 서명, 국제연합(UN) 핵사찰단에 자국 핵관련 시설에 대한 사전통보없는 접근을 허용했습니다. 19일에는 리비아가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 장거리미사일 등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계획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재 정부에 막대한 원유 매장량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들 국가가 잇따라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동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바야흐로 온 세계가 평화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각국 주식시장에도 이번 크리스마스를 기해 산타가 한 아름 선물을 안겨줄 것만 같은 분위깁니다. 미국 국토안보부가 알카에다의 테러 감행 조짐을 포착해 테러 경보를 두번째로 높은 "오렌지"로 상향했는데도 이튿날 열린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상승해 이른바 "지정학적 위기"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여 줬습니다. 미국이 선제적으로 강도 높은 경계 태세에 돌입한 이상 소요가 있다한들 단발성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시장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악의 축" 가운데 이란, 이라크를 떠나 보내고 마지막 보루로 남게 된 북한 변수를 안고 있는 한국은 상황이 다릅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리비아의 WMD 자발 포기 선언이 나오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원수와 동일한 생각을 갖길 원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에 따라 주요 해외 언론들은 이라크와 리비아를 무너뜨린 미국의 압박이 이제 북한으로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표현을 빌자면 김정일 위원장은 후세인과 카다피라는 상반된 모델을 놓고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후세인 체포와 리비아 선언을 전후한 뉴스 흐름은 북한 핵문제를 깊은 안개 속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당초 연내 개최가 확실해 보이던 북한핵 관련 제2차 6자회담은 기약없이 내년 초로 미뤄진 상태입니다. 이와 결부된 관련국의 군사적 움직임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19일에는 일본 정부가 북한의 중거리 탄도 미사일에 대한 방어 개념을 적용,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LA타임스는 21일자에서 지난 여름 이후 주한미군 재배치와 맞물려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로 미국군의 최신식 무기들이 "조용히" 배치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19일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북핵과 관련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당분간 한국의 장기 신용등급이 상향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확인했습니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운명을 맞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한반도에 몸을 담고 있는 이상 이를 회피할 수는 없겠죠. 이라크에 대해서는 일방적 폭력이, 리비아에 대해서는 일방적 양보의 원칙이 관철됐으니 이번에는 상호 양해의 원칙이 발휘되길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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