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0회 SRE에서 증권사와 보험사의 해외 대체투자 문제를 지적, 베스트리포트 1위를 차지했던 한국신용평가 관계자의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 년전부터 크레딧 업계가 우려한 대체투자 확대 움직임은 코로나19를 만나 급제동이 걸린 상태다.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국내를 넘어 해외로 해외로 뻗어 나가던 흐름은 주춤해졌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대체투자 상승속도는 둔화됐을지언정 보유자산에 대한 가치 하락 등 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입장과 일단 제동이 걸린 만큼 대체투자에 대한 리스크는 일정 부분 완화됐다는 시각이 맞선다. 이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금융기관의 대체투자 관련 상시 모니터링시스템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금감원은 연내 대체투자 관련 가이드라인을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정으로 만들 방침이다.
31회 SRE에서 국내 크레딧 이벤트 발생시 가장 큰 잠재요인중에 해외 대체투자 등 증권사 리스크를 꼽은 응답자는 28.2%로 가계부채(33.0%)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특히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해외 대체투자 등 증권사 리스크를 가계부채와 동일한 30.6%로 응답, 공동 1위에 올려놨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10대 증권사의 해외 대체투자 중개 규모(셀다운)는 2조975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말 10대 증권사의 셀다운금액 12조1985억원에 비해 4분의 1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영향으로 풀이된다. 2016년 1조원을 밑돌던 10대 증권사 셀다운 금액은 2017년 2조1752억원, 2018년 5조4213억원, 2019년 12조1985억원으로 급격한 증가추세였다. 10대 증권사의 셀다운에서 발생한 수수료 등 중개손익은 2016년 512억원에서 지난해 3296억원으로 6배나 늘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결산부터 증권사들의 대체투자 기초자산별 분류를 세분화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 국내 실물, 국내 PF, 해외 부동산&실물, 해외PF 등 크게 5가지로 분류하고 있지만, 투자의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 등 변제순위를 구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안나영 한기평 팀장은 “통상 LTV와 엑시트 분양률 등의 자료를 토대로 리커버리 위험을 판단하지만, 변제순위는 크레딧 이슈 발생시 회수율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차별요인”이라며 “국내 증권사의 해외 대체투자 대형 딜 참여시 선순위 비중이 낮아 자산 부실화 발생시 손실 발생부담이 극대화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자기자본 3조원이상의 종합투자금융사업자인 미래에셋대우(006800)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005940) KB증권 삼성증권(016360) 메리츠증권(008560)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등 8개 대형증권사의 상반기말 대체투자 익스포저는 28조3107억원으로 지난해말대비 5.9%(1조5879억원) 증가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증가세를 유지한 것으로 중소형증권사의 대체투자 익스포저가 지난해말 6조8921억원에서 6월말 6조7312억원으로 2.3% 줄어든 것과 대조적이다.
6월말 기준 대형증권사의 △국내 PF 익스포저가 11조8609억원으로 가장 많고 △해외 부동산 및 실물 익스포저가 10조8258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국내 부동산 3조4055억원 △국내 실물 1조8432억원으로 집계됐고 △해외PF는 3753억원이었다.
이처럼 대형증권사의 대체투자중 해외부동산 및 실물 비중이 38%를 웃도는 가운데 코로나19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은 불가피한 상태다. 실제 지난해 한 대형증권사는 자산가치가 20~30%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원금손실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함에 따라 해외 오피스, 호텔 등 부동산 투자자산의 가치가 상당 폭 저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9월 ‘금융안정상황’보고서를 통해 해외 대체투자 관련 리스크를 우려했다. 해외부동산 등 대체투자는 통상 장기투자로 유동성이 낮고 시장 상황이 악화시 자산 매각 등 빠른 대처가 어려워 부실이 누적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증권사는 자기자본투자 외에도 해외 대체투자의 상당 부분을 기관 또는 개인투자자에게 재매각(셀다운)해 수익을 얻기 때문에 유동성 리스크와 투자자 손실 우려가 크고, 시장 상황이 추가로 악화될 경우 손실 흡수여력이 상당폭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산 앞둔 손실 처리 ‘골머리’…금감원 전수조사 나서
문제는 이같은 자산가치 하락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있다. 코로나19에 증권사발 리스크가 확대되자 금융감독원은 올 상반기 22개 증권사로부터 대체투자 관련 딜을 모두 전수조사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22개 증권사의 대체투자딜은 860여건이었고, 이중 일부는 손실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집합투자증권(펀드) 등을 통해 투자된 경우 개인투자자 손실로 직결될 수 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사모펀드 51개 운용사를 조사한 결과 8월 말 기준 환매가 중단된 펀드규모는 6조589억원에 달했다. 이뿐만 아니라 7263억원 규모 펀드가 환매중단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이후 지난 5년간 금융회사에서 판매한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피해로 인한 보상금액은 1조 666억원이나 됐다. 이중 증권사가 56.7%인 6051억원에 이르는 보상액을 지급했거나 지급할 예정이다. 라임펀드와 독일 헤리티지펀드, 옵티머스펀드 등이 이름을 올린 탓이다. 은행은 4615억원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증권사의 대체투자 딜소싱에 대해 직접투자된 860여건을 전수조사했다”며 “전수조사 결과 딜소싱 관련 내용을 각 증권사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했고, 미진한 부분들은 개선하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매중단 등 연기가 되는 프로젝트에 대해선 프로젝트별로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식이나 채권처럼 실시간 시가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연말 결산을 앞두고 일정부분 손실을 반영한 충당금 설정 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각 증권사가 프로젝트별 리스크와 손실 가능성을 점검해 결산시 충당금 설정 등으로 반영할 것”이라며 “결국 증권사의 대체투자 손실은 결산 사업보고서가 나와야 집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평사도 ‘한계’…감독당국 전수조사 정례화 필요
신평사들은 증권업의 리스크에 대해 크게 신용위험과 유동성 위험 2가지로 접근하고 있다.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발생 가능성과 △우발채무의 경우 자산가치와 무관하게 자본시장 변동성 확대 등으로 유동화증권 미매각 리스크를 부담해야 하는 부분이다.
안나영 팀장은 “지난 3~4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자본시장 변동성이 극대화하며 파생결합증권 관련 마진콜 부담 등으로 유동성 부담이 보다 문제됐다”며 “현재는 신용위험 부담이 더 위험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반적으로 증권사들이 단기 조달, 자산 듀레이션을 짧게 가져가는 조달운용구조를 지니는데 대체투자의 경우 자산만기가 길어 단기조달-장기운용이라는 기본적인 만기미스매칭구조로 장기운용과정에서 자산가치 변동성을 불가피하게 부담하게 된다.
최근에는 특히 호텔, 항공, 쇼핑 등 상업시설, 오피스 등 자산가치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손실발생가능성이 확대됐고, 연말 자산가치 평가를 통한 회계상 충당금 적립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밸류에이션의 적합성을 장담할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대체투자 관련 자산가치 변동위험(신용위험)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증권사들의 대체투자 확대에 대해 충분히 우려하고 있으며 적극 모니터링할 방침이다.
다만 증권사들의 딜소싱에 대한 전수조사 정례화 등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금감원 관계자는 “코로나19 변수와 사모펀드 사고 등으로 딜소싱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이를 정례화할 지 여부는 감독국 등과 내부적으로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매달 만기도래하는 대체투자 현황 등을 점검하는 한편 협회 자율규정으로 대체투자 프로세스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연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4일 처음으로 ‘대체투자 리스크관리 및 내부통제’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금융투자회사의 자산운용업무 종사자, 기관투자자 등을 대상으로 국내외 대체투자 분야별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관련 주요 이슈를 다룬다.
금감원은 증권사들의 대체투자 확대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투자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단순한 수익률만 좇아 투자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SRE 자문위원은 “증권사들에 판매사 책임을 물어 신탁계정에 대한 투자 손실도 보상하도록 하는 추세”라며 “최근 경계가 흐려지고 있지만, 사기 등이 아니면 어디까지나 투자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1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