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공] 다음 주부터 미국 비자를 신청한 한국인의 인터뷰 면제 대상이 크게 축소돼 비 이민 비자를 신청한 사람의 95% 이상이 인터뷰를 받아야 한다. 현재는 65% 수준이다. 또 오는 8월 말부터는 미국 비자를 신청하는 모든 한국인들은 주한 미 대사관에서 지문 스캔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오는 8월23일 이후 전화를 통한 비 이민비자 인터뷰 예약이 폐지되고 인터넷으로만 가능하게 된다. 인터넷을 통한 인터뷰 예약 시스템은 30일부터 가동된다. 인터넷을 통한 비자 인터뷰 예약은 기존 비자 수수료 100달러 외에 1만2000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미 대사관은 이번 조치는 미 국경 보안 강화를 위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실시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김선일씨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을 내세워 영국군 다음 규모인 3600명을 파병한 한국이 미국의 대 테러 대책의 하나로 마련된 국경 보안 강화 조치를 적용받게 된 것은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비자 인터뷰 대상자가 기존보다 30% 이상 증가해 현재 2~3개월 걸리는 인터뷰 대기기간이 더 길어질 것으로 보여 미국 가기는 더 힘들어질 전망이다. 이날 미 대사관은 한국이 비자 면제국가가 될 전망에 대해서는 당분간 전혀 가망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버나드 알터 주한 미대사관 총영사는 30일 오전 서울 남영동 미 대사관 공보과 자료정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새로운 비자 방침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여행자의 편의와 국경 보안의 균형을 놓고 고민했으나 국경 보안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렸다"며 "현재 한국인 대상 비이민 미국비자 신청자에 대해 실시해 오고 있는 인터뷰 면제 프로그램 대부분이 8월1일자로 없어지고 2일부터 새 방침이 발효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새로운 비자 정책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에는 미 대사관이 인정한 여행사를 통해 비자를 신청하거나, 미 대학과 교류프로그램이 있는 대학이 추천한 경우, 대기업에서 자주 출장을 다니는 직원들을 위해 추천한 경우 인터뷰가 면제됐으나 이제는 완전히 없어진다.
따라서 앞으로 비 이민 비자 신청 때 인터뷰 면제 대상은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미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만 14세 미만 또는 만 80세 이상 신청자 ▲한국정부 직원으로 외교 및 관용여권 소지 신청자와 동반 가족으로 한정된다. 현재는 만 55세 이상 및 16세 미만 신청자 등이 인터뷰 면제 대상이다.
알터 총영사는 "2003년 7월 이전에는 미국 비이민 비자 신청자의 35%만이 비자 인터뷰를 했지만 이후 각종 면제 프로그램이 종결됨에 따라 65%선까지 높아졌다"며 "이번 조치로 인해 미 비자를 신청한 한국인 가운데 인터뷰 대상자는 비이민 신청자의 95%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외교관과 어린이, 노약자를 제외하면 비 이민 비자를 신청한 모든 한국인은 인터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알터 총영사는 "8월 말부터 미 비자를 신청하는 모든 한국인은 지문 스캔을 받아야 한다"며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오는 10월24일 이후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즉 미국의 비자 면제 대상국민인 일본인도 미국에 입국한다면 공항이나 항구에서 지문 스캔을 받아야 한다는 것. 지문 스캔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본이 재일교포들에게 행했던 지문 날인과 비슷한 것이다.
한국민의 반감을 의식한 듯, 알터 총영사는 "지문 스캐닝은 대사관에서 받느냐 미국 현지 공항에서 받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을 입국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주한 미 대사관은 스캔받은 비자 신청자의 지문을 본국에 보낸다. 미 정부가 테러 연류 혐의자인지 등을 검토한 뒤 그 결과를 다시 보내 비자 발급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번 지문을 스캔 받으면 다음에 비자 발급 때는 이전 지문과 대조를 통해 본인이 맞는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한편,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인터넷으로만 비자 인터뷰 예약을 받게된다. 인터넷으로 비자 인터뷰 예약을 하는 "비자정보 인터넷 서비스"는 30일부터 시작하되, 오는 8월20일까지는 전화 예약과 병행한다. 그러나 8월23일 이후에는 인터넷으로만 예약이 가능하다.
인터넷 예약은 신청자가 사이트(www.us-visaservices.com)에 접속한 뒤 PIN(개인고유번호)을 입력하고 미국 방문 목적과 개인신상정보, 인터뷰 희망일자와 시간 등을 입력하면 된다. PIN은 해당 사이트에서 1만2000원을 비자 또는 마스터 카드로 결제해 구입해야 하며, 한 번 구입으로 신청자를 포함해 직계가족 5명까지 동시 예약할 수 있다.
알터 총영사는 "이는 비자 인터뷰 과정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인들의 컴퓨터 능력이 뛰어나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터넷으로만 신청을 받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인터넷 시스템에 이미 5개국의 미 대사관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미 대사관의 설명은 논란거리가 많다. 일단 "비자정보 인터넷 서비스" 이용료가 1만2000원이나 되는 산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비자 수수료가 100달러인데, 여기에 인터넷을 이용해 예약만 하는데 1만2000원이나 부담하는 것은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터 총영사는 "대사관이 아니라 2개의 미국 민간 회사가 이 시스템을 운영한다. 그들도 이익을 남겨야 한다"며 "한국인들이 전화로 비자 인터뷰 날짜를 잡으면 보통 8~10분 걸려 전화료가 많이든다. 또 미 대사관은 신청자들이 입력한 정보를 곧바로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대답했다.
한 해 미 비자를 신청하는 한국인은 70만명으로 비자정보 인터넷 서비스 1만2000원을 곱하면 산술적으로 연간 84억원이나 된다. 이 시스템을 운영하는 미 회사는 가만히 앉아서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미 대사관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비용을 한국인이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인터뷰 면제 대상자의 축소로 인해 인터뷰 및 비자발급 기간이 더욱 지체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알터 총영사는 "내년 1월까지 인터뷰 창구를 3개 더 늘리고 직원도 추가로 고용할 계획으로, 현재 인터뷰 뒤 5일 정도의 비자발급 기간을 계속 유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 여행사 사장은 "인터뷰 뒤 5일 안에 비자 발급을 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현재 비자 신청을 한 지 인터뷰를 받을 때까지 2~3개월이나 걸린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다.
사실 미 대사관이 따로 인터뷰 시설을 늘리지 않는 한 인터넷을 통한 인터뷰 예약은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과 별로 상관이 없다.
알터 총영사는 "현재 미 대사관 건물이 너무 좁다. 다른 곳에 크게 지으면 하루 2500명을 처리할 수 있고 대기 시간도 3분의 1이상 단축할 수 있다"며 현재의 미 대사관 공간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지방 대도시에서도 비자 인터뷰를 하면, 서울로 집중되는 인원을 분산시킬 수 있고 지방 거주자들의 불편도 덜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지방에 인터뷰 시설을 만들려면 보안 비용 등이 너무 많이 든다"며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결국 미 대사관은 현재 대사관 건물 규모가 좁다며 한국 정부가 덕수궁 터에 미 대사관의 신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인 지방 인터뷰 시설 건설은 하지 않겠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영국에 이어 2번째 규모로 파병하는 한국이 대 테러 전쟁 정책의 하나로 실시하는 미 비자 발급 요건 강화 조치를 그대로 적용받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에게 비자 면제국으로 지정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나 오히려 혹을 더 붙인 셈이 됐다.
기존 한국인 신청자의 65%가 비자 인터뷰를 하는 데도 대기 기간이 2~3개월 걸렸는데, 인터뷰 대상자가 95%로 늘어나면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 대사관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모두 적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 철군의 도미노 속에 거꾸로된 예외적인 선택을 한 한국의 경우에 왜 미국이 대 테러 정책으로 실시하는 국경 보안 강화조치의 예외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 미 대사관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기존 미국의 비자 면제국에게는 추가로 더 강화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
"한국이 비자 면제국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알터 총영사는 "비자 면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비자 거부율이 3% 미만이어야 하고, 불법 체류자가 적어야 한다"며 "한국의 비자 거부율은 5%가 넘는다. 또 불법 체류자 숫자도 미국내 주요 국가 국민 가운데 10~15위 안에 든다"고 부정적으로 말했다.
그는 특히 "9·11 테러 이후 비자 면제 국가가 새로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아르헨티나의 경우 비자 면제국에서 제외됐고, 벨기에의 경우에는 기계인식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한국이 비자면제 국가가 될 가능성은 당분간 전혀 없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