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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하면서 패권 국가들간 권력구도가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쫓겨난 모양새가 되면서 표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기뻐하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중·러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 亞집중 토대 마련…중·러, 테러·난민 등 부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20년 아프간 전쟁을 끝마치자 샤덴프로이데(남의 고통을 보며 기쁨을 느낌)를 만끽했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힘의 균형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간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평판을 손상시키는 데 주력해 왔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아프간 철군과 관련 “미국의 신화가 무너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신화에서) 깨어나고 있다”고 평했다. 러시아 국영언론들도 “미국을 돕지 말라는 교훈을 남긴 사태”라며 “그들(미국과 유럽 동맹국)은 당신을 혹사시킨 뒤 버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중국과 러시아가 겉으로는 미국의 약점을 내세우는 선전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미국만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당장 난민 유입, 테러, 마약 밀매 등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하게 됐으며, 앞으로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점점 더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항저우에 위치한 저장국제대학원의 마샤오린 국제관계학 교수는 “미군이 급작스럽게 아프간에서 철수한 것은 중국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을 대체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등이 아프간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이 아프간 사태를 수습하는데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아프간 특사인 자미르 카불로프는 방송 인터뷰에서 “서방 국가들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있는 대사관을 재개방하고 탈레반과 경제재건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테러리즘을 특히 경계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와 중국을 방문한 탈레반 지도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이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것을 두번 다시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WSJ는 “중국 정부는 미국이 실패한 곳에서 성공하길 갈망하면서도 아프간 국내 정치에 휘말리거나 파산한 아프간에 무기한으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을 떠맡는 것을 꺼리고 있다”면서, “러시아 역시 아프간에 조심스럽게 관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 결정은 중장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부담을 키우고, 미국의 대(對) 아시아 전략을 강화하는 등 세계 권력구도를 재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정부에 조언하는 학자들은 미국이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전보다 더 강력한 초당적 결의를 보여주고, 전략적 중요성이 큰 서태평양에 군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아프간 철군을 선언하며 “탈레반과의 전쟁에 복귀하기보다는 우리 앞에 놓인 도전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점점 더 독단적인 중국으로부터 직면하고 있는 치열한 경쟁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은 미 정부가 ‘아시아 중심 전략(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을 이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중국 대응 방안으로 마련됐지만 미국이 아프간과 중동에 집중하면서 달성하지 못했던 외교안보구상이다.
카네기 모스크바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에프 선임연구원은 “미군 장비들과 미국의 세계적 우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영원한 전쟁에 더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옳았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