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요샌 시장에 관해 뭐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참 곤혹스럽습니다. 뉴스에 굶주린 기자 신분도 아니고 그저 시장의 흐름을 타고 돌아다니는 입장이라 시장이 시원찮으면 덩달아 마음까지 가라앉아 영 무엇을 말해볼 기운이 나질 않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시장이란 것은 죄다 이상하게 굴러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선은 눈에 보이는 2가지 주제가 온 세상을 흔들어댑니다. 이라크와의 전쟁과 바로 이웃에 위치한 북한의 위협 - 시장에서는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 지정학적 불확실성(geo-political uncertainty)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닥친 문제는 전세계 시장 참여자들이 이라크와 북한을 사실 여부를 떠나 ‘악의 축’이란 표현으로 묶고, 다시 우리나라와 북한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다루는 통에 결국은 엉겹결에 이라크와 우리나라가 한 몸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비극적 현실입니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위해 안보리가 소집돼 소련의 거부권 행사와 전 세계적인 반대의견에도 불구하고 3월17일 무장해제 시한과 함께 일단은 미국의 단독전 형태라도 치러지기는 할 모양입니다. 사람들 귀에 이미 못이 박혔을 전쟁이야기에 이제는 pre-war 경제와 post-war 경제의 모습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대부분은 하나의 시나리오에 매달립니다. 전쟁 전의 경기침체와 전쟁 후의 신속한 경기회복!! 아마도 미국의 전쟁의 당위성을 얻기 위한 심리전의 결과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차라리 빨리 전쟁이나 나고 봐라.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경제가 좀 돌아올 것 아닌가 하는 기대심리를 은근슬쩍 뿌려 놓자는 것이지요. 전쟁의 당사자가 겪는 고통과 비극은 그러한 매몰찬 기대에 묻히기 마련일 테니 말입니다.
미국 증시는 그래서 또 주저 앉았습니다. 일부 정부지원을 받는 담보대출 취급기관(Fannie Mae와 Freddie Mac 등)의 자금부족 가능성이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이래저래 각종 경제지표는 계속 하강 곡선을 긋고 와중에 폴 쿠르그만 교수같은 사람은 미국의 10년내 파산이란 엄청난 단어까지 쏟아 놓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재정적자가 계속되고 경기침체와 노인사회로의 진행이 계속된다면 3조달러의 재정적자로 결국은 파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소설인지 독설인지를 내뱉기도 했습니다. UN주재 영국대사의 이라크전 연기발언도 빨리 해결되길 바라는 경제에는 도움이 될 턱이 없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해병대가 상륙작전에 투입되어서는 상륙정에 태워서 먼바다에서 수없이 뺑뺑이를 돌리면 배멀미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육지에 내려만 놓으면 죽을둥 살둥 뛰쳐 나간다고 했는데... 요즘 세상이 그 뺑뺑이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암튼 일본 주식시장도 죽을 쑵니다. Nikkei가 7862로 끝났으니 1983년 1월 이후 최저랍니다.
달러의 약세는 불보듯 뻔한 이치인데 우리 원화는 달러에 대한 반대편 통화중 엔이나 유로화 방향이 아닌 이라크 통화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비극이자 슬픔입니다. 지정학적인 운명이지요. 못난 동생을 둔 형의 운명인가요? 수출시장에서 호각을 다투던 엔화와의 경쟁은 물건너 가고 아니... 우리가 저만큼 앞서 나가는 건가? 환율 약세를 통한 수출경쟁력이라? 말은 그럴싸한데 느낌은 전혀 그게 아니군요. 참담하달까... 그간 우리나라에 들어와 피땀 빼먹던 돈들이 비좁은 문을 비집고 앞다퉈 나가느라고 환시장이 무너진 것같은 느낌이 마구 듭니다.
어디선가 시작점을 잡아서 좀 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분명히 존재하는 시점입니다. 단연코...
어제의 시장분석기사중 Stephan Roach(모건스탠리 수석경제분석가)의 중앙은행의 실책이란 글이 맘에 들었습니다. 점진적인 시장대응이 결국은 경기침체를 가져온 바탕이며, 구닥다리 같은 소비자물가지수에 연연한 인플레이션 지표에 준거한 통화대책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었지요.
현대와 같은 자존자산과 부동산 등의 실물자산가치가 중요한 사회에서 이들 자산의 가치 하락(recession)과 일반 물가의 등락이 동시에 고려되어야만 올바른 경기판단이 이루어지고 경기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식 등 자본자산 가치의 하락와중에서의 일반물가의 상승현상이 과연 정당한 인플레이션인가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볼 화두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길을 걸어야 할까요? (정해근 산업은행 금융공학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