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12일자 30면에 게재됐습니다. |
A씨는 지난달부터 고시원보다 좀 나은 방이 없을까 찾아다니고 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원룸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은 모두 임대료가 월 55만원 이상이었다. 보증금도 거의 1000만원 가까이 했다. A씨는 "고시원과 원룸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큰 강이 있는 것 같다"면서 "고시원의 환경이 열악하지만 내 신분이 달라지지 않고서는 원룸으로 옮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방 값 싼 것이 유일한 장점인 고시원의 주거환경은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없다. 서울시가 올해 초부터 서울시의 고시원 5396곳을 점검한 결과 이 가운데 1208곳이 안전 문제나 건축법상 위법사례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5곳 가운데 한 곳 꼴이다. 무단 증축을 하거나 고시원에 금지되어 있는 개별 취사시설을 구비했거나 주차장을 불법으로 전용해 휴게실로 활용하는 등의 불법 사례도 많았다.
방에서 출입구까지 연결하는 복도가 3번 이상 꺾이는 구조여서는 안된다는 규정이나 복도의 폭이 150cm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 등은 2007년에 만들어진 법규여서 그 이전에 지어진 250여곳의 고시원은 여전히 좁은 복도가 미로처럼 얽혀있다.
열악한 고시원이 계속 늘어가는 가장 큰 이유는 고시원의 집 주인들 입장에서 볼 때 고시원의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부터 고시원을 오피스텔 등이 속한 준주거시설로 바꾸면서 고시원을 짓더라도 금융권에서 국민주택기금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주차장도 134m²당 한 대만 마련하면 됐다. 그러나 도시형 생활주택은 방 한 칸당 0.5대의 주차공간을 갖춰야 한다. 그만큼 임대료가 비싸지고 사업성이 떨어진다.
창 없는 방을 만들더라도 임대를 놓을 수 있어 건물 한층을 임대해서 고시원을 만들어도 이른바 `죽는 공간`이 없다. 신촌의 한 중개업자는 "임대만 잘 되면 땅 주인 입장에서는 고시원의 수익률이 가장 높다"면서 "넓고 쾌적한 고시원을 만들어봐야 그래도 고시원이라 임대료가 그만큼 더 비싸지지는 않아 간신히 누울 정도의 방을 여러 개 들이는 쪽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시원의 주거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별 대안이 없다는 점 역시 고시원의 수요를 계속 늘리는 요인이다. 원룸으로 옮기려면 월세가 최소 20만원 이상 더 든다. 5만원을 아끼기 위해 창문없는 방을 선택하는 이들에겐 넘기 어려운 벽이다.
그러나 지난 2009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이 안은 아직 국토부와 서울시 사이에서 잠정 보류된 상태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고시원과 원룸의 중간 형태인 미니원룸을 보급하려면 국토부에서 법령을 고쳐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아직 뚜렷한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미니원룸을 제도화하려면 고시원보다 약간 더 넓은 수준일 뿐인 공간을 거주용 주택으로 허가해주는 데 따른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차라리 미니원룸 형태의 공공임대주택을 지어 이런 수요를 흡수하는 게 나아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