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공] "박근혜 2기 체제"가 출범했다. 총선 후 한나라당의 변화에 국민들은 주목했지만, 상생도 상극도 아닌 어정쩡한 행보에 당내 개혁도 지지부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주류측의 비토도 심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압도적인 지지로 복귀했고, 최고위원 경선을 통해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박 대표는 이제 명실상부한 제1야당의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왔다. 그 박 대표를 뒤에서 떠받히고 있는 사람은 박세일 여의도연구소 소장이다. 지난달 말 연구소 소장으로 내정된 뒤, <한나라당 3개년 발전계획>을 작성하는 등 당 정책브레인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낸 그는 지난 40여일 간의 한나라당 행보에 대해 "대단히 미흡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의 휴가가 끝난 뒤, 국민들에게 한나라당의 개혁안이 보고될 것이라고 밝혔다. 22일 박세일 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단독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표가 직면한 리더십과 주요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당 안팎에서 일고 있는 "아버지의 후광=박근혜의 한계"라는 등식에 대해 박 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서는 확실한 반성과 사죄를 할 날이 올 것"이라며 "산업화의 업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얼마나 억압되었는지 본인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민주주의 얼마나 억압됐는지 본인도 알고 있어"
박 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를 분명히 하며 "경제 기적을 이뤘다는 점에서 70%의 공이 있고, 그 과정에서 인권탄압, 민주화를 역행하는 등의 30% 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는 "선진화"에 대해선 "박정희 시대의 근대화를 발전적으로 계승, 정치·사회·문화 일반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함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이룬 성과와 리더십에 대해선 "산업화라는 측면에서 자신의 유능함을 드러내고 있지만, 21세기 지도자는 좀더 복합적인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며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정부여당을 향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개혁적 보수의 입장인 박 소장은 여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두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서 그걸 실용주의라고 말한다"라며 "대통령이 나오고 나서 당을 만들고 그 당에는 진보부터 보수까지 다 들어가 있다, 그렇게 되면 정책적 판단이 불가능해 진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사민주의라도 들고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일갈했다.
호남 끌어안기, 즉 한나라당의 서진정책과 관련해서는 "우선 낮은 자세로 전라도의 비판과 원한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며 "DJ와의 만남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는 그는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과 약속 없는 만남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며 북핵, 군축, 경제지원 등에 있어 실질적인 합의를 강조했다.
찬반 양측으로부터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수도이전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반대한다"며 당과 다른 입장을 취했고, "여야 모두 당리당략으로 이 문제를 처리했던 점을 사과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도이전특별법의 폐지를 주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박 소장과의 인터뷰는 22일 오후 3시 국회 의원회관 8층에 있는 의원실에서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다. 다음은 박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
◇"이명박 시장, 21세기 지도자로는 좀더 복합적인 리더십 필요"
- 박근혜 대표의 "정부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상황이 계속되면 야당이 전면전을 선포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말이 파장을 낳고 있다. 박 대표의 "이념적 정체성"이 정확히 뭔가.
"우리사회에 묘한 흐름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 역사적 정통성을 훼손하거나 부정하려는 사회 흐름이 있다. 박 대표는 그걸 걱정하는 것이다. 민주사회가 되고 개방사회가 되어서 생각은 다양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박 대표의 이념적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 공동체주의이다. 그건 우리헌법의 기본질서다. 여야를 떠나 헌법을 수호하는 것은 정치인의 임무다. 나도 심각하게 본다. 그 점에서는 상생이 불가능하다. 성장이냐 분배냐를 따질 땐 상생할 수 있지만 인간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할 것인가에는 중간지대가 없다."
- 친일진상규명법 개정, 북한 함정의 서해북방한계선(NLL) 월선 및 우리 해군의 보고누락,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전향거부 장기수" 민주화 판정과 일부 조사관의 전력 논란 등의 일련의 현안에 대해 평소와 달리 강한 논평을 했는데.
"그런 일련의 움직임이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흔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의도하든 아니든, 의도하는 세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헌법적 기본질서의 그간을 흔드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사안을 개개별로 따지면 일리가 있고 과거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해원해야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내재된 것이다."
-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과의 대표회담을 거절했다. 여당 의원들이 박 대표 부친전력을 언급한 것에 대한 불쾌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건 예의문제다. 여당이 다수당이면 점잖고 야당이 덤벼들어도 국가를 위해 대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 문제는 박 대표가 역사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 적절하게 해결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당의 당수를, 그것도 여당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서로 정치의 격을 높였으면 좋겠다."
◇"과거 정리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 지난 전당대회를 통해 박근혜 대표가 명실상부한 제1 야당의 지도자가 되었다. 또한 차기대권주자로서 박 대표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넘어야 할 산인데, "아버지 극복방안"이 있나.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로서 과거를 어떻게 정리하느냐 그 뒤에 비전을 어떻게 여느냐라는 관점에서 내 개인의 입장을 얘기하겠다. 박정희 시대 공과를 따지자면 70%는 공이 있고, 30%는 과가 있다. 절대빈곤 벗어나 산업화를 이루었다. 1963년 GNP 100불에서 1995년 1만불이 된 것은 인류 역사상 없는 고속성장이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당시 산업화 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억압이 되었던 사실은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과오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지도자인지 그런 과거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 사과의 시점과 형식은?
"박 대표에게는 아버지로서 혼재된 감정이 있을 수 있다. 딸의 입장에서는 사랑과 존경, 연민이 있을 수 있고 그걸 뭐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누구보다도 효심을 가지고 있는 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룬 산업화의 업적도 곁에서 보았고, 그 과정에서 인권과 민주화가 얼마나 억압되었는지 본인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 업적은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그때 발전을 동력으로 삼아 한 번 더 기운을 불어넣어야지 선진화로 갈 수 있다. 대신 30%에 대해서는 철저한 반성과 사과, 사죄가 있어야 한다. 확실하게 인정하고 납득할 만한 조치가 있을 것이다. 과거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여기에 새로운 시대의 과제를 덧붙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데, 박 대표가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가 아버지의 유산, 후광을 활용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박대표의 장점은 투명함, 합리성, 민주성이다. 곁에서 본지 얼마 안되었지만 자기 입으로 박 대통령을 언급하고 그걸 간접적으로 이용하는 언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 대표는 자기로서 평가받고 싶어한다. 밖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다."
- 당대표 수락연설에서 박 대표는 연말까지 선진국가 개조계획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현재 한나라당의 키워드는 "변화"와 "선진화"인데 박정희 시대의 "조국 근대화"와의 계보를 잇는다는 인상이 강하다.
"당명에도 "선진"이 들어가야 한다(웃음). 역사는 항상 계승, 발전한다. 과거를 부정하면 미래의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근대화가 결국 산업화인데 그 때는 경제중심이었다면 그 다음은 정치민주화, 그리고 다음 단계는 선진화다. 정치·사회·경제·문화가 다 들어간 개념이다. 우리사회는 민주화는 되었는데 자유화가 안되었다. 투표를 통해 정권을 바꿀 수 있는 민주화는 달성되었지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로 가려면 해결해야 할 것이 많다."
◇ 대표, 진솔담백...근시안적인 권력욕 없다"
-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추진력이나 과단성도 있고, "선진화"라는 비전에 더 적절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는 세력도 많다.
"이명박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 강북뉴타운개발, 서울시청 앞 광장 등은 산업화라는 맥락에서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준 것이다. 경제발전이나 산업화가 선진화의 한 부분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좀더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이 시장의 한 쪽 장점은 드러났지만 다른 면의 장점은 어떨지 모르겠다. 빨리 결론 내는 것은 옳지 않다."
- 박 소장은 정권 관계자들의 필독서였던 <대통령의 성공조건>의 저자이기도 한데 "선진화"에 걸맞는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세가지다. 우선 세계화. 세계로 나아가 세계적 리더들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다음은 국내인데 복합적이고 균형적인 사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와 문화, 청년과 노인, 성장과 분배 등의 문제에 있어 단면만 본다면 21세기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국민통합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박 대표의 "애인"은 국가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애국심은 알아줄만 하지만 그 외 지도자로서 별다른 장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진솔하고 담백하다. 흔히 정치인에게 보여지는 탁함이 없다. 근시안적인 권력욕이 없다. 공평하고 투명하다는 것은 지도자로서 굉장한 장점이다. 그걸 가지고 지난 총선에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제 박 대표는 2가지 지점에 직면했다.
총선은 국민을 상대로 했다. 그 때는 정치인으로서 좋은 자질이 드러났지만 이제는 당을 추스려나가야 한다. 조직을 얼마나 개혁하느냐에 박 대표의 능력이 평가될 것이다. 복잡다기한 당을 일사분란하게 장악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당으로 만들기 위해 당명개정 뿐만 아니라 당의 구조와 체질을 바꿔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살아남을 지 어떨지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21세기 국가지도자가 되려면 비전에 대한 자기확신이 있어야 한다. 좋은 것들을 나열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꾸어주어야 한다. 그건 지식으로 되지 않는다. 도덕성과 엄청난 지적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대처나 등소평이 세상을 바꾼 것이 지식으로 바꾼 게 아니다. 21세기는 엄청난 변화와 도전의 시기인데 그 역할을 해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 인터뷰 기사 이어집니다.)
여의도연구소장 내정자는 누구?
뉴 한나라당 박근혜 체제의 브레인... 선대위원장 역임
"3선급 초선"으로 알려진 박세일 한나라당 의원(56). 그는 "뉴"한나라당을 표방하는 박근혜 체제의 브레인으로 꼽힌다. 박형준, 박재완, 윤건영, 이주호 의원 등 이론과 전문성으로 무장된 한나라당 내 소위 "박세일 사단"의 리더.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이 삼고초려 끝에 영입할 정도로 공을 들인 인물이다.
그의 저서인 <대통령의 성공조건>은 참여정부 인수위원들의 필독서로 꼽혔고 수 차례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총선을 20일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해 선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작년 말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을 맡으며 시민사회그룹과 정치권의 다리역할을 하며 정치·정당개혁을 주도하기도 했다.
개혁적 보수,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그는 최근 한나라당의 향후 3년, 그러니까 2007년 대선 수권전략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 발전 3개년 계획>안을 준비했고, 박근혜 대표에게 중간보고를 한 상태. 박 대표는 이를 골간으로 본격적인 리더십 시험대에 오를 "박근혜 2기 체제"의 마스터플랜을 조만간 발표하게 된다.
박세일 의원은 지난달 말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내정되었지만 아직 이사회를 거치지 않아 정식 임명장은 받지 못했다. 그는 연구소 운영방안에 대해 "한나라당 중장기 발전방향, 이념적 정체성, 국가비전을 실현할 개혁 프로그램 등과 정책과제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이회창 총재 시절 여의도연구소가 "비선그룹"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그는 "재정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에 총재의 비서실 기능으로 전락했다"며 열린우리당의 핵심인사와 정책연구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정당정책육성법"을 논의중이라고 귀띔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그룹의 역량을 당과 연결시키는 다리역할이 필요하다"며 "원외와 원내를 아우르는 지점에 여의도 연구소가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주요 약력] ▲서울대 법학과 졸업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교수 ▲청와대 정책기획·사회복지 수석비서관 ▲한국동북아지식연대 공동대표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 ▲한나라당 선대위 공동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