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1948~1970)의 첫째 동생 전태삼(71)씨는 9일 어머니 고(故) 이소선 여사가 1980년 계엄포고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사건의 재심에서 발언 기회를 얻어 “오늘 재판을 통해 대한민국이 정의로운 나라, 민주주의 살아 있는 나라를 위해 힘썼던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의 피해 호소와 눈물, 고난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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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홍순욱 부장판사 심리로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이 여사의 재심 첫 공판이 41년 만에 열렸다.
전태일 열사는 22살의 나이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말라’며 비참한 노동 현실을 알렸다.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달라’는 아들의 유언을 계기로 어머니 이 여사는 민주화 운동에 나서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불렸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 계엄 당국의 허가 없이 시국 성토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같은 해 12월 6일 계엄포고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재심은 검찰의 직권 청구로 이뤄지게 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서인선 부장검사)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신군부가 1980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저지른 행위가 헌정질서파괴 범죄에 해당하고, 반대로 이를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는 정당행위여서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지난 4월 이 여사를 포함해 5명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재심청구 사유를 밝히면서 “피고인의 행위는 그 행위의 시기, 동기, 목적, 대상, 사용수단, 결과 등에 비춰볼 때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심사유가 인정됨에도 재심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이유 등으로 피고인에 대한 재심이 개시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저히 정의에 반한다고 판단돼 형사소송법 제424조 제1호에 근거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검사가 직접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여사에 대한 범죄사실 요지에 따르면 당시 계엄포고에 의해 옥내외 집회는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이 여사는 당국의 허가 없이 집회를 진행, 불법집회로 간주한 것이다. 실제 이 여사는 1980년 5월 4일 오후 9시30분께 고려대 도서관에서 등교생 약 500여명의 시국 성토 농성에 참석해 청계피복 노조의 결성경위, 노동자달의 비참한 생활상 등에 관한 연설을 했다. 또 그는 며칠 뒤 5월 9일 오전 10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노총회관에서 금속노조원 약 600여명과 합세해 ‘노동 3권 보장하라, 민정 이양하라, 동일방직 해고 근로자 복직시켜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과 변호인 측에 당시 이 여사가 유죄 판결을 확정했던 판결문 이외에도 어떠한 경위로 시국 성토 농성에서 연설하게 됐는지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또 이날 재판에서 전씨의 발언 중 이 여사의 연설과 관련한 진술을 자료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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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씨는 “전두환이 정말 5·18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날이 오길 바라고 국민 앞에 사죄하고 뉘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씨는 이날 재판이 열린 장소와 날짜의 의미도 강조했다. 도봉산 아래 북부지법 자리는 예전에는 국군창동병원 부지였으며, 그전에는 전씨 가족이 판자를 깔고 살던 곳이었다는 것. 이어 44년 전인 1977년, 전 열사 분신 이후 이 여사와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들이 결성한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 사수투쟁이 열린 날이라고 설명했다.
전태일 재단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역사의 법정에서 어머니는 이미 무죄”라고 밝혔다. 재단은 “올해는 어머니 돌아가신 지 10주년이 되는 해 비로소 재심이 이뤄졌다”며 “우리는 이번 재판이 어머니 한 분에 그치지 않고 개발독재 과정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모든 노동자·학생·시민의 재심이 이루어져 확실한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10월 14일 오전 11시 20분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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