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중국 공산당의 크리스마스 몽니

  • 등록 2017-12-26 오후 3:09:08

    수정 2017-12-26 오후 3:09:08

[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혼자 베이징에 있다보니 영 분위기가 나지 않아 중국 인터넷 쇼핑몰인 타오바오에서 트리 하나를 샀다. 엉성한 장식물을 붙이고 나니 그나마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이곳에 오고 나서 가장 당황한 것 중 하나가 우리와 달리 크리스마스를 상징할만한 화려한 조명이나 트리가 없어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시내의 큰 건물이나 백화점, 호텔 1층에 가야 볼 수 있는 게 다였다. 그런데 여기 오래 살고있는 교민들 말론 그나마도 최근 들어서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트리가 늘어나는 걸 불편해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종교를 금지한 나라이다 보니 크리스마스를 불편해하는 시선은 적지 않다. 최근 중국 공산당의 청년 엘리트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은 후난성 남화대 공청단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는 내용의 행동 수칙에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속내는 크리스마스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 특히 미국 문화의 확산을 불편해하는 게 더 크다. 실제로 공청단은 “공산당원은 공산주의 신념에 따르는 모범이 돼야한다”며 “미신이나 아편과 같은 서방 정신을 맹목적으로 따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단체는 전통 중국 문화를 확산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재차 촉구했다.

중국 공산당이 미국 문화 확산에 불편해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구 인터넷을 막기 위해 만리방화벽을 쌓고 우회접속망(VPN)이 없으면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는 물론 구글 접속도 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 외국인 투자자나 해외 비즈니스를 하는 중국인을 위해 중국 당국이 승인한 VPN은 일부 허용되고 있지만 대다수 VPN 서비스 업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 문을 닫거나 벌금을 물어야 했다. 지난 22일엔 한 중국 남성이 VPN 서비스를 판매하다 적발돼 징역 5년 6개월, 벌금 8000만원의 중형을 받게 됐다.

물론 중국과 미국의 위상이나 경제 격차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9차 당 대회 개막식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중국의 꿈”이라며 “그 꿈을 실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위주의 정책을 펴며 글로벌 사회에서 영향력이 약해진 틈을 타 중국은 동남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영향력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 영향력에선 아직 한참 뒤쳐진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 정부가 최근 영화나 음악, 스포츠 등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1980년대부터 세계 음악 시장이나 영화시장을 호령해온 미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세련된 미국 문화를 동경하는 젊은이도 많다. 스타벅스가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뒀고 축구장 반 크기 만한 세계 최대규모 매장이 상하이에 등장한 것에 대해 중국인들이 커피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미국 문화에 대한 동경이 드러난 것이란 평가도 만만치 않다.

이미 정부의 움직임에 일부 중국 누리꾼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맑시즘도 서양에서 들어온 것 아니냐 빈정대고 있고 또 다른 누리꾼은 시 주석이 2010년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노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웨이보엔 중국 정부의 조치를 비웃듯 호텔 트리 장식 앞에서 찍은 사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저 장벽을 쌓아 올린다고 모든 걸 막을 순 없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어느 곳이든 이동할 수 있고 조금의 노력만 한다면 어떤 목소리가 있는지 알 수 있는 사회에선 말이다. 국민들도 웃고 있는 이 몽니를 언제까지 부릴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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