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국내 수출기업들 중 절반 이상은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에 긴축경영으로 대응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국내 수출제조업 448개사를 대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 영향과 대응 실태조사’를 진행했다고 17일 밝혔다.
| 지정학적 리스크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조사 기업들의 응답. (사진=대한상공회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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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에 따르면 미중갈등·러우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영 위험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업은 조사 기업 전체에서 66.3%를 차지했다. 39.5%는 ‘일시적 위험 정도’로 인식한 반면 23.7%는 ‘사업 경쟁력 저하 수준’, 3.1%는 ‘사업 존속을 위협하는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수출실적은 지난해 9월 547억달러에서 올해 9월 588억달러로 1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출시장을 둘러싼 지정학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큰 상황이다. 발발 1년에 접어든 ‘중동 사태’는 최근 주변국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고 미중 갈등도 11월 미국 대선 이후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영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응답한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유형을 조사한 결과 복수응답 기준 ‘환율변동·결제지연 등 금융리스크’(43.1%)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물류차질 및 물류비 증가’(37.3%)였다. 이외에 ‘해외시장 접근제한·매출 감소’(32.9%), ‘에너지·원자재 조달비용 증가’(30.5%), ‘원자재 수급 문제로 인한 생산 차질’(24.1%), ‘현지사업 중단 및 투자 감소’(8.1%) 순으로 실제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주요 교역국별로 피해유형을 살펴보면, 중국을 대상으로 한 교역기업의 경우 ‘해외시장 접근 제한 및 매출 감소’가 30%로 가장 많았다. 미중 갈등에 따라 대중국 수출이 대폭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 러시아 대상 수출입기업들은 모두 ‘환율변동·결제지연 등 금융 리스크’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러·우 전쟁 발발 당시 해당국과 거래하고 있던 기업들의 수출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금융제재로 외화송금이 중단되는 피해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 지정학적 리스크 피해 유형에 관한 조사 기업들의 응답. (사진=대한상공회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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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및 중동으로 수출입하는 기업들은 ‘물류 차질 및 물류비 증가’를 피해유형으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 해당 기업들의 경우 중동전쟁 이후 홍해운항을 중단하고 남아프리카로 우회 운항을 시작하면서 물류비 부담이 커졌다.
기업들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 확장적 전략보다는 긴축경영을 우선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에 따른 기업차원의 대응전략을 묻는 질문에 수출기업의 57.8%가 ‘비용절감 및 운영효율성 강화’를 꼽았다(복수응답). ‘대체시장 개척 및 사업 다각화’에 응답한 기업도 52.1%를 차지했다. 이외에 ‘공급망 다변화 및 현지조달 강화’(37.3%), ‘환차손 등 금융리스크 관리’(26.7%), ‘글로벌 사업 축소’(3.3%) 등의 대응방안을 차례로 지목했다.
대한상의는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기업 부담을 줄이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의 전략산업 정책 강화에 대응해 첨단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 존재하는 지정학적 리스크보다 앞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무엇인지 식별하고 이에 대한 경고를 우리 수출 기업들에게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공급망 훼손이 기업들의 생산 절벽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대체 조달시장 확보 및 국산화 노력이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