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이 대규모 손실 사태를 맞고 있는 가운데, 은행에 투자일임업 허용 등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금융 상품 판매 수수료 위주의 자산관리(WM)사업 모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인데, 금융당국은 ELS 판매 금지까지 검토하는 터라 은행권이 요청해왔던 투자일임업 허용은 현 시점에서 요원해 보인다.
|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설치된 하나은행·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 ATM기기 모습.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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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한국금융연구원은 ‘국내 은행의 비이자이익 확대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기존 자산 관리 서비스는 단기적인 판매 경쟁과 마케팅 위주의 영업 관행을 확산시켜 고객별 자산 관리 서비스 활성화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판매 수수료 중심의 사업 모델은 비이자수익 구조가 갖는 변동성을 높이고, 수익 안정성 확보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은행의 고객 자산 확보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쓴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포트폴리오 관리·운용 보수(fee) 중심의 사업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WM 전문 인력이 고객의 현재 재무 상태, 여유자금 발생 시 활용 계획, 투자 성향 등 심층 면담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후 자산 관리를 추진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운용 자산(AUM) 중심의 포트폴리오 영업 전략이 정착하기 위해선 “투자일임업 허용 등 규제 완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보고서는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금융 상품 판매 규모에 연동된 수익 구조에서 탈피해 고객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AUM 수익 모델로 전환됨으로써 은행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또 운용 자산 중심의 WM 사업 확대가 지금보다 불완전 판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권에는 3년 전인 2021년 투자 자문업만 허용된 상태다.
하지만 홍콩 ELS 사태로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가능성은 더 줄어드는 분위기다. 불완전 판매 책임을 다퉈야 하는 데다 홍콩H지수 등 글로벌 경제 흐름을 읽지 못해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애초 투자일임업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해온 금융 당국은 ELS의 은행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주요 시중은행들도 지난해 11월 홍콩H지수 연계 ELS 판매를 중단한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가 ELS 상품 전체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투자 상품을 못 팔게 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라 (투자일임업 허용은) 말 꺼내기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