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를 위하여] 노숙 경험을 재기의 발판으로

가정폭력 시달린 이주 여성, 재기 노리며 저축왕으로
기업 부도로 자살 기도 가장, 저축 통해 새로운 인생
서울시 운영 올해 노숙인 저축왕 선발대회에서 드러나
  • 등록 2012-01-02 오후 9:00:00

    수정 2012-01-02 오후 8:39:36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03일자 1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강경지 기자] #1 = 필리핀 출신 J(여·37)씨는 2010년 노숙인 쉼터를 찾았다. 12년 전 한국으로 시집왔지만 남편의 폭력과 무능력 탓에 결국 아이들과 함께 노숙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오다 내린 결정이었다. 영어에 능통한 J씨는 쉼터의 도움으로 미국인 가정의 ‘베이비시터’로 취업해 재기를 꿈꾸고 있다. 1000만 원을 모아 저축왕에 선발됐다.   2 = 박모(여·47)씨는 남편이 생활고로 갑자기 행방을 감춘데다 딸마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우울증에 시달렸다. 병원을 전전하다 퇴원 후 갈 곳이 없어 2010년  쉼터에 입소했다. 갈곳 없던 노숙 생활을 접고 여성노숙인 주간센터 ‘일·문화카페’의 무료급식 사업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희망도 찾았다. 지금은 빚을 모두 갚고 식당에 취업했다.   3 =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남부러울 게 없던 송모(남·53)씨. 사업 실패로 투신 자살까지 시도하다가 쉼터에 몸을 기탁하면서 새 인생을 찾았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신용-리스타트 사업’을 통해 지난해 3월부터 빚을 차곡차곡 갚고 있다. 지금은 저금통장만 4개에 900여만원의 저축액을 자랑한다. 자녀들도 잘 자라고 있다. 딸은 2009년 서강대에 수시 합격했으며 이듬해 아들도 한양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새해가 밝았지만 거리를 헤매는 노숙인들의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다가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냉담한 탓이다.

하지만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이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며 재기의 몸부림을 보이는 노숙인들의 노력에 조그만 도움이 보태진다면 더욱 아름답지 않을까.

노숙인들의 자활·자립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저축을 장려하고, 체계적인 금전 관리를 유도하는 ‘노숙인 저축왕 선발대회’가 운영되고 있다. 2일 서울시가 선발한 ‘올해의 노숙인 저축왕’은 70명에 달한다.

노숙인 저축왕들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4억6000만원을 벌어 절반이 넘는 2억6000만원을 저축한 것으로 집계됐다. 1인당 656만원을 벌어 375만원을 모은 셈이다. 특히 저축왕 상위 10%에 속하는 7명은 수입금의 90% 이상을 저축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었다.

서울시는 노숙인 저축왕 70명 전원에게 오는 3월 약정 예정인 ‘희망 플러스 통장’ 가입자로 추천할 방침이다. 또 노숙인 저축왕 상위 10%에게 표창장을 수여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저축왕은 6개월 이상 꾸준히 근로소득이 있어야 하고, 주택청약저축을 들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한다”며 “때문에 저축왕으로 선발된 노숙인의 자활·자립 의지는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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