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병수기자] 그동안 금융과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취재를 해 온 김병수 기자가 `재계`라는 새로운 영역의 취재를 맡은지 3주가 됐습니다. 김 기자는 특히, 재계를 실질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맡아 `그들의 진짜 관심은 뭘까`라는 호기심도 많습니다. 그동안 재계의 입장을 못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직접 듣는 것보단 덜 하겠죠. 김병수 기자가 재계의 첫 인상을 전합니다.
오늘(27일) 아침, 한 신문을 통해 재경부에서 근무하다 `가교역할`을 떠안고 전경련에 파견나와 있는 신제윤 국장의 인터뷰 기사가 제 머리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신 국장의 생각과 관점을 모른다고 생각해오지는 않았던 터라, 그의 이같은 변화된 소회가 어찌된 일인지 관심에 끌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변화된 생각을 한두번 만나보는 것으로 모두 이해할 순 없겠죠. 먼저, 저의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3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가 금융권을 떠나 경제부처를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제 머리 속을 지배했던 것은 `고시패스한 공무원답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경제부처 공무원들, 뭘 물어봐도 모르는게 없었으니까요. 그것이 어느 정도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확인해 볼 일이나, 하여튼 경제부처의 공무원들이 모르는 것은 거의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이 뒤집어지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는 점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업무상 특성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고, 또한 공무원들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프라이드도 감안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제는 이 `프라이드`입니다. 이것이 과하거나 부족하면 항상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재계를 맡은 3주 동안 느낀 점도 이런 것 같습니다. 재계 특히 재벌그룹의 프라이드가 매우 강하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언제부턴가는 `권위주의`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난 13일, 전경련 회장단의 정례회의가 열렸습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회장단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회의 전날까지도 누가 참석하는지조차 보안에 부칠려고 하는 실무자들의 모습에서는 갑갑함마저 들었습니다.
정부와 냉랭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회장단 회의의 사진촬영을 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모두 무시하더군요. 속된 말로 그렇게 세게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뒤끝은 별로였다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게 `재계의 문화인가`라는 생각만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업계 어딜 가봐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대기업체 임원들은 쉽게 만나기가 어렵고, 실무자들과 통화하는 것 역시 쉽지 않더군요. 대부분 `우리(홍보파트)를 통하는 게 더 편하지 않느냐`는 말만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게 기본입니다. 기자들을 편하게 배려해주겠다는 것을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이지만, 이는 또다른 의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지난 25일엔 노무현 대통령과 재계 수장들의 회동이 있었습니다. 이날 전경련의 보도자료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올해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5대 그룹이 올해 투자계획을 14.4조원 늘리겠다는 겁니다. 비율로는 무려 45.5%나 증가된 내용입니다. 무려 두달새 이 정도의 투자계획을 늘려 잡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했습니다.
전경련측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간단했습니다. 선거와 탄핵정국이 끝났고, 무엇보다 대선자금 수사가 종결됐기 때문에 기업들의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됐다는 얘깁니다. 그동안 기업들의 입에선 `돈이 없어 투자를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항변이 줄을 이어왔기 때문에, 굳이 이해를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리고, 이같은 투자확대 수치에는 통계적 `장난(?)`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습니다. 이전 조사에선, 600대 기업을 조사한뒤 이를 다시 그룹별로 합산했기 때문에 그룹 계열사이면서도 600대 기업에서 제외돼 잡혀 있지 않던 숫자가 더 추가되는 효과가 발생한 거죠. 물론, 이들의 투자금액은 그리 클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전경련이 이 규모가 얼마인지 분명히 얘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즉,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는 것은 모두에게 혼란만 일으킵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투명하지 못하다는 거죠. 물론, 총선 승리와 탄핵 기각 후 힘을 받을대로 받은 청와대와 여권의 기류를 감안해 재계가 일단 머리를 숙여야 하는 심정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현실의 정치적 변수에 의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꿈`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나기 올듯하니, 일단 비를 피하자는 심산이지,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고가자는 것은 아닌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현명관 전경련 상근 부회장의 이대 강연은 이를 잘 대변합니다. 현 부회장의 얘기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면, `글로벌 스탠다드는 다국적 기업의 논리로 답은 아니고, 한국적 차별화가 시급한데, 이를 위한 여건은 과거가 더 좋았다는 주장입니다.
그의 주장은 또 "과거엔 힘입는 지도자가 있었고, 정부가 자신(기업)들의 얘기를 잘 들어줘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수 있었다"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후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실망한 것은 여전히 재계의 논리가 무엇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가 너무 둔해서 그런 지도 모르겠으나, 현 부회장의 얘기는 시대에 맞는 논리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과거가 낫다는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다시 복권됐다고 없던 투자계획이 줄줄이 쏟아지는 현실을 설명해줄 만한 재계의 논리는 누구한테 가면 들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