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64) 전 상원의원이 당선됐다. 마르코스 전 의원은 한때 필리핀을 철권통치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동명 아들이다.
|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 사진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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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마르코스 전 의원은 지난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57) 부통령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개표율이 95%에 이른 10일 오전 마르코스 전 의원은 로브레도 부통령의 두 배인 3000만표 이상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르코스 전 의원은 페이스북 스트리밍 영상에서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와 단체들, 정치 지도자들이 단결된 메시지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와 운명을 같이 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달 말 공식 결과가 발표되면 마르코스 전 의원은 6월30일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마르코스 전 의원의 아버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0여년간 장기집권한 독재자다. 그는 필리핀 시민들이 1986년 ‘피플 파워’를 일으켜 항거하자 자리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3년 뒤 사망했다. 아들인 마르코스 전 의원은 1991년 본국으로 돌아온 뒤 북부 이로코스노르테주에서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마르코스 전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된 데는 과거 아버지 마르코스 정권 하에서 자행된 잔혹한 고문과 살해 등이 잊혀지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해 마르코스 전 의원은 과거를 상기시키는 모든 활동을 기피했는데, 로이터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마르코스 전 의원이 토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계엄령 시대에 대한 질문조차 짜증을 냈다고 전했다.
마르코스 전 의원의 당선 소식에 인권단체 카라파탄 등은 그가 대통령직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르코스 전 의원의 아버지와 가족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자신이 수혜를 입었지만 공식 인정한 적이 없고, 모르는 척하면서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로브레도 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다음 선거때까지 진실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함께 치러진 부통령 선거에서는 마르코스 전 의원과 러닝 메이트를 이룬 사라 다바오 시장의 당선이 확실시됐다. 그녀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로, 경쟁자인 프란시스 팡길리난 상원의원을 3배 이상 격차로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