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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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유럽이 멀어지고 있다. 양측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제외하고 지구 온난화,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 세금 및 통상 이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대부분의 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달라진 외교·경제 정책에서 기인한다.
1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선 기후협정 체결 2주년을 맞아 ‘하나의 지구(One Planet Summit)’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반(反)트럼프 진영의 단합대회를 연상케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협정 탈퇴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다”며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의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입담에 유럽 내 인사들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인 빌 게이츠와 아놀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미국측 참여 인사들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며 동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려이 파리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발표했을 때에도 “미국이 세계에 등을 돌렸다”며 “미국에겐 물론 지구의 미래에 있어서도 실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날에는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주요 5개국이 미국의 이익만을 중시한다며 미국의 세제개편안에 거세게 반발했다. 5개국 재무장관은 공동명의로 스티븐 미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미 세제개편안은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며, 이중과세를 방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안대로 입법될 경우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안엔 다국적 기업의 미국 내 자회사가 해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입할 때 20%의 특별소비세를 매긴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자회사가 해외 본사에 송금하는 자금에 대해서도 10%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항이 있다.
특히 예루살렘의 지위에 대해서는 미국과 유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국제법상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미국을 등에 업은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에게 미국의 뜻을 따라달라고 요청했으나, EU 회원국들 중 단 한 곳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U는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결정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며 ‘2개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지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앞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웨덴 등 5개국 대사들도 지난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미국의 결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은 미국 우선주의 및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부터 예견됐다. 본격화된 것은 지난 5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이후부터다. 메르켈 총리는 회의에서 돌아온 뒤 “더 이상 누군가를 전적으로 의지할 시대가 더는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유럽인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기후협정 탈퇴 선언, G20 정상회의 등을 거치면서 골은 더욱 깊어졌다. 특히 G20 정상회의에선 기후변화, 통상문제 등 주요 의제 논의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나머지 19개국 정상들 간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사진=AFP PHO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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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EU에서 탈퇴하려는 영국과 그나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이마저 최근 틀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30일 영국 극우단체 브리튼퍼스트(Britain First)의 부대표 제이더 프랜슨 계정에 올라온 반무슬림 동영상 3편을 리트윗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이를 “잘못된 행동”이라며 이례적으로 비난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이나 신경쓰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이후 요르단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혐오주의 단체의 동영상을 리트윗한 것이 잘못된 행위라는 생각은 확고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 내에서는 트럼프의 국빈방문을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이 독자 노선을 걷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유지해 온 국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사이가 멀어지면서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입지도 약화되고 있다. 특히 예루살렘 수도 선언과 관련해선 프란치스코 교황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비판·질타하고 있다. 이에 미국 내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가 국제무역에서 미국을 고립시킬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으며,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워싱턴포스트(WP)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은 향후 몇 년간 중동 내 미국의 이익을 크게 해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선 미국과 유럽이 뜻을 같이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