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RO 될수도'…헌재 결정문 朴 뇌물죄 반영 수위 고심

형법위반 탄핵사유 사실관계 향후 형사재판서 바뀔 여지
사실관계 꼼꼼히 따질지, 필요한 만큼만 인정할지 딜레마
통진당 해산 당시 헌재는 RO 존재 인정, 대법은 불인정
"법원에서 바뀔 수 있는 부분 매듭하느라 헌재 고민일 것"
  • 등록 2017-03-03 오전 11:20:29

    수정 2017-03-03 오전 11:20:29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의 ‘형법 위반’ 부분의 분량을 두고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히 서술하자니 형사재판에서 사실관계가 뒤집힐지 모르고 간략히 줄여서 쓰자니 결정문이 빈약해질 수 있어서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를 보면, 헌재가 판단해야 하는 박 대통령의 형법 위반 사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형법상 △공무상 비밀누설죄 △직권남용죄 △강요죄 △(특가법상)뇌물죄 △제삼자뇌물죄 등이다.

헌재가 형법위반 부분이 탄핵사유인지 판단하려면 사실관계부터 정리해야 한다. 사안이 중대한 만큼 최대한 자세히 사실관계를 쓸 것으로 보는 게 중론이다.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터에 크게 까다로운 작업은 아니다.

서초동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탄핵을 인용하든 기각하든 허투루 사실관계 잡으면 당사자가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대한 사실관계를 다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관련 형사재판이 대기 중이라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언젠가는 기소돼 재판을 받을 처지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가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기 때문이다. 이미 최순실씨 등 관련자에 대한 형사재판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훗날 박 대통령과 최씨의 형사재판을 맡은 법원이 헌재와 다르게 사실관계를 인정하면 논란이 될 수 있다. 형사재판은 엄격한 증거조사를 거칠 뿐 아니라 관련자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법정에서 번복하는 경우가 있어 두 기관의 사실인정이 어긋날 가능성은 있다.

헌재가 결정문의 사실관계를 세밀하게 따지면 논란의 소지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면 헌재의 탄핵 (인용 혹은 기각) 결정의 공신력 뿐 아니라 해당 형사재판의 결과에도 치명타일 수 있다. 아울러 하급심 법원은 헌법기관인 헌재의 사실관계가 부담돼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데에 소극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을 두고 헌재와 대법원이 충돌할 수도 있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이 대표적이다. 헌재는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면서 혁명조직(RO)의 존재를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이듬해 1월 RO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점이 시빗거리가 됐고 공정성 논란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에 따라 헌재가 결정문 작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넘어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사실관계를 풍성하게 해서 결정문에 힘을 실을 것인지, 아니면 사실관계를 최소화해서 향후 발생할 논란의 소지를 잠재울 지 헌재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노희범 변호사는 “헌재가 인정한 사실관계가 나중에 법원에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재판관들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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