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청년 취업난에도 기술인재 양성을 통해 매년 평균 80%대의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한국폴리텍대학. 기술대학인 폴리텍이 최근 학생들에게 인문학과 영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취업률을 자랑하는 기술대학에서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부는 이유는 뭘까. 또한, 취업난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이 있는 걸까. 이에 대한 혜안을 듣기 위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폴리텍대학에서 박종구 이사장(사진)을 만났다.
정체성 없는 기술자는 도태된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직업교육기관이다. 폴리텍은 현장 중심의 교육을 통해 우수한 산업인력을 양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 경력단절여성, 청년, 다문화가정 등 취업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직업 재교육도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취업난 해결을 위한 롤모델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안주하지 않는다.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정체성 없는 기술자는 결국 도태한다’는 신념으로 계속 변화를 추구한다. 취업률이 높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스승의 마음이다. 이는 튼튼한 기술에 인문학 사고까지 겸비한 창조적 융합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했다.
박 이사장은 “기업들로부터 ‘폴리텍 출신 직원들은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뛰어난데 보고서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거나 ‘외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이때 기초학습 특히 인문학적 교육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이를 위해 우선 교과 과정부터 수정, 인문 교과 비중을 취임 당시 11%에서 18%까지 끌어올렸다. 교양개설학점도 20학점에서 31학점으로 확대했다. 특히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직도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데 보고서 한 줄도 못 쓰면 되겠느냐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국사 과목에 대한 비중을 높였다. 현재 교양선택과목인 한국사는 내년부터 필수교과로 전환하기로 했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그는 “민족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국어와 국사 교과 강화를 통해 의식 있는 기술자를 양성하고 싶다”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종구 이사장의 인재 양성 철학의 또 다른 축은 글로벌 역량 강화다. 해외 취업은 퀄리티가 높은 업종이 많은데, 이를 위해서는 영어가 필수라고 믿기 때문이다.
박 이사장의 집무실에는 뉴욕타임스가 수북이 쌓여 있다. 박 이사장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와 칼럼 등을 꾸준히 읽으면서 지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사는 필독을 권하고 싶었지만 학생들이 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영어 능력이 부족해 아쉬움이 많았다.
이에 그는 학생들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양영어는 물론 토익, 실용영어까지 교양필수과목으로 정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자체 연수원을 활용해 원어민이 진행하는 영어캠프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전공 교과 수업을 활용해 전 계열 모든 학과에 전공영어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는 “학생 해외 취업은 더욱 가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전공분야의 첨단 매뉴얼이나 전문용어를 이해하고 부품 소재 데이터 시트를 해석하려면 전공영어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지난 2002년이후 10년 동안 60% 초반에서 정체돼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해법은 없는 걸까.
박 이사장은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균형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 중심으로 가기에는 우리나라 5000만 인구는 다소 많은 편”이라며 “면적 대비 인구 밀도가 높다는 점에서도 서비스업이 성장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박 이사장은 “그동안 서비스업 육성 정책이 많이 나왔지만, 획기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최근 발표된 서비스 산업 인력의 체계적 양성은 진일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발전하면 서비스업 등 3차산업의 비중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그러나 이것이 제조업을 등한시하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 비중은 30% 수준인데 제조업 비중이 작아지는 것은 고용 측면에서 상당히 위험한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 대기업의 고용 창출 비중은 10% 초반대로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대기업의 채용 구조가 대규모 정기 채용에서 소규모 상시 채용으로, 신입직 채용에서 경력직 채용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데 이것은 대기업 이기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산업구조 자체의 변화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과거 고급 인력 분야도 자동화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
그는 “고용구조가 변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면서도 “결국 경제 파이 자체를 키워야 고용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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