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눈만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행정에 불만을 품은 한 민원인으로부터 염산 테러를 당한 경북 포항시청 공무원의 가족이 남긴 편지가 공개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 지난달 29일 오전 9시쯤 경북 포항시청 대중교통과에서 개인택시 감차 사업에 불만을 품은 60대 A씨가 공무원에게 뿌린 염산.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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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경북 포항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60대 민원인은 택시 감차 정책에 불만을 품고 과장급 공무원 A씨에게 생수병에 든 염산을 뿌렸다. 순식간에 염산 테러를 당한 A씨는 한쪽 눈과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이송됐다. 민원인은 지난달 31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혐의로 구속됐다.
이와 관련, 지난 17일 A씨의 동료는 페이스북에 “사무실에서 업무 중 염산 테러를 당하신 우리 교통과장님 사모님이 병간호하시며 느끼신 애끓는 심정을 전한다”라며 A씨 부인의 편지를 공유했다.
편지에서 A씨 부인은 “청천벽력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세상의 그 어떤 단어로도 담아낼 수 없었던 그날 남편의 사고 소식”이라며 “오로지 눈만 살려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남편은 31년 외길인생 절반을 교통과에 근무했다”며 “땅 길은 물론 하늘길까지도 모두 섭렵한 제 남편은 그야말로 교통에 특화된 공무원이었다”라고 했다. A씨 부인은 “(남편은) 집보다 직장이 소중했고 가족보다 직원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다. 재발한 암 치료 중인 아내 간호보다 업무가 중요한 사람이었다”라고 했다.
| (사진=채널A 화면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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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고가 일어나고 나니 왜 하필 내 남편이어야 했는지 세상의 모든 것이 원망의 대상이었다”라며 “제 남편은 그저 자기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한 공무원의 한 사람이었을 뿐인데 사람이 어찌 사람에게 이리도 무자비한 방법을 행할 수 있는 것인지”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라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A씨 부인은 “그 원망조차도 퍼부을 시간이 내겐 없었다. 오로지 남편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라며 “눈 뜨고 있는 동안은 5분 단위로 안약과 안연고, 화상 부위 드레싱을 했다. 그렇게 며칠을 정신없이 병원에서 보내다 보니 죽을 것 같고 죽일 것 같았던 분노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상황에서 그래도 고마웠던 분들이 생각이 난다”라며 “사고 직후 초기 대응을 잘해 주신 과 내 직원분들, 소리 없이 뒤에서 참 많은 것을 도와주시는 동료분들, 응급실로 한달음에 달려오신 시장님, 믿기지 않는 상황에 거듭거듭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시며 진정으로 마음 아파하셨던 분들을 보며 남편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져 있지만 아마도 가슴으로는 웃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상처투성이 몸과 마음을 부둥켜안고 아픔 속에서 치유를 갈망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줄 아는 남편”이라며 “아직도 뿌연 안갯속에 휩싸인 오른쪽 눈에 안개가 걷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조금만 힘을 써도 화상 부위 핏줄이 툭툭 터지는 기나긴 화상 치료의 길, 너무나도 끔찍했던 사고 트라우마 치료의 길이 남아 있지만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씩씩하고 담담하게 치료에 임할 것”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신나게, 마음껏 다시 날개를 달고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꿈꾼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