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을(乙)’로 불리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이 삼성전자(005930)와 손을 잡고 해외 첫 극자외선(EUV) 공동연구소를 설립한 것을 두고 반도체업계와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평가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가릴 것 없이 반도체 선폭이 좁아질수록 EUV 기술이 필수적인데 삼성전자가 이를 활용하고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활짝 열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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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은 이데일리와 통화에서 “ASML의 주요 EUV 고객사 중에서도 삼성전자와는 신뢰가 더 깊어진 핵심적 관계가 된 것”이라며 “삼성전자로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EUV 공급 기반을 마련했다”고 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ASML이라는 능력 있는 친구와 삼성전자의 협업 관계가 더 진전됐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도 “장비 세팅에서 반도체 생산까지 EUV 기술을 대폭 활용할 수 있어 삼성전자에 큰 기회”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현지 시간) 네덜란드 반도체장비 기업 ASML와 EUV 공동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삼성전자와 ASML이 총 7억유로(약 1조원)를 투자해 국내에 연구소를 짓고 차세대 노광장비 개발을 추진한다. ASML 입장에서 반도체 제조기업과 함께 해외에 연구소를 짓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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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V 장비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이다. 파운드리에서의 활용이 두드러지는데 주로 7나노미터(nm· 1㎚는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에 쓰인다. 하위 기술인 심자외선(DUV) 장비를 이용해도 7나노 이하 반도체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한 번에 회로를 그리는 EUV와 달리 2~4번에 걸쳐 미세회로를 새겨야 하기 때문에 제조가 길어지고 안정적인 수율도 확보하기 어렵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이번 협력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내후년 본격화할 2나노 파운드리 경쟁에서 업계 1위 TSMC를 바짝 따라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기존 핀펫공정보다 개선된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을 3나노에 적용 중이고 TSMC는 2나노부터 GAA를 도입할 예정이다. GAA 노하우를 미리 축적한 삼성전자가 EUV 활용 역량까지 끌어올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규복 회장은 “한정된 인력과 장비 등을 고려하면 삼성전자는 이전 세대의 파운드리까지 맡고 있는 TSMC와 달리 2나노 이하 선단공정에 집중해야 한다”며 “EUV 협력이 TSMC를 따라잡을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메모리에서도 EUV 장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선폭이 점점 좁아지는 차세대 D램이 꾸준히 나오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 2020년 3월 D램에 EUV 장비를 업계 최초로 적용했고 2021년에는 EUV를 활용해 14나노 DDR5 D램을 양산했다. 같은 해 SK하이닉스도 EUV를 활용한 D램을 만들기 시작했고 EUV 적용 DDR5 제품도 공개했다.
EUV를 활용해 선폭이 좁은 메모리를 만들면 소비전력 절감 및 속도 개선, 용량 증가 등 성능 향상은 물론 웨이퍼 한장에서 나오는 반도체칩도 늘어난다. 반도체 제조기업으로선 생산단가를 줄이면서도 프리미엄을 내세워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많은 물량을 쏟아낼 수 있어 점유율 상승에도 유리하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파운드리 외에 메모리에서도 EUV 활용이 점점 많아질 것”이라며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어 경쟁력 향상에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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