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와 관련 정부가 설명해 왔던 대로 한미 공조가 잘 되고 있는지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한미 동맹을 굳건히 믿고 강조하던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최근 북미 대화 의지를 밝힌 미국과 포커스를 다르게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 美 "그랜드 바겐... 아는 바 없다"
"정말 솔직하게, 나는 그랜드 바겐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오전 열린) 한미 장관회담에서 그런 종류의 어떤 얘기도 나오지 않았다.(To be perfectly honest, I was not aware of that. Northing of the sort came up our session with the South Korean counterparts.)" (21일 한미 장관회담 후 브리핑, 컬트 캠밸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정말 그 부분(그랜드 바겐)에 대해 코멘튼 할 게 없다. 이것은 그의(이명박 대통령)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가 언급한 부분이다. (Because this is his policy. These were his remarks.)" (22일 이안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
북핵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한미 공조가 `필수`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면 미국측 책임있는 당국자들의 이같은 발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당황한 건 물론 외교부다.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한미장관 회담은 현지 시간으로 21일 오전 11시에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그랜드 바겐을 제안한 시각은 오후 1시경이다. 외교부는 당국자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 17일 주한 미 대사관 대사대리에게 `그랜드 바겐`의 개념과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며 "당시 캠벨 차관보가 일본 출장 중이어서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다"고 해명성 발언을 했다.
외교장관 회담 후 브리핑에서 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캠벨 차관보는 "전혀 알지 못한다"며 양국 회담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국제외교 무대에서 일종의 `불쾌감`마저 전달되는 발언이다.
다음날 이어진 미 국무부 대변인은 `그의 정책이고 그에 대해 언급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측에서는 한 발 더 나간 냉랭한 반응이며, 한미 공조를 강조하던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머쓱해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즈는 22일 미 고위당국자를 인용, 이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에 대해 미국은 `놀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 그랜드 바겐 제안은 `국내용?`
한미 공조 균열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왜 이 시점에서 이 대통령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그랜드 바겐`을 제안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나는 북미, 북중간 대화 분위기에 견제구용이라는 것이다. 북핵 문제에 주도권을 상실한 현 정부가 미국과 중국이 이끌고 있는 협상 국면에 발을 거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핵 문제가 협상국면으로 접어들자 보수층을 의식한 현 정부가 북한 문제에 이니셔티브를 쥐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국내정치용`으로 이같은 무리한 제안을 했다는 주장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역사적인 맥락을 무시하는 일괄타결안은 사실상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지적하고 "이념적 경직성에 의한 무리한 판단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같은 제안을 한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면 보수층을 겨냥한 국내 정치용이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도 "그간 한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면 이런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의 잔치"라고 일갈했다.
양 교수는 "지난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북측이 상징적으로 생각하는) 6.15선언에 대한 언급도 없이 `남북간 상설대화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과 똑같은 (의미없는) 제안"이라고 말하고 "북미, 북중간 대화 국면이 되자 (제재의 고삐를 푸는) 느슨한 모습을 보일 것에 대한 조바심으로 이같은 제안을 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