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올해 초 서울의 한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다 떨어진 무주택자 박모씨. 예비당첨자 명단에도 없어 보통 실망한 게 아니다. 이 아파트는 당첨자의 계약 포기와 부적격 취소로 잔여 물량이 제법 나왔고, 어이없게도 남은 물량은 모두 청약통장이 없이도 선착순 신청을 한 무순위 청약자들에게 돌아갔다. 미계약 물량이긴 하지만 무주택자와 현금을 쥔 다주택자가 같이 경쟁한다는 점을 박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부가 아파트청약 단지에서 미계약분이 과도하게 나오고 이 물량을 현금부자나 다주택자가 가져가는 이른바 ‘줍줍(줍고 또 줍는다는 의미)’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청약 제도를 개선한다.
현재 신규 청약 시 1·2순위 신청자 중 가점순 또는 추첨으로 당첨자와 예비당첨자를 선정한다. 계약 포기나 부적격 취소로 발생한 물량은 예비당첨자에게 가는데 여기서도 계약이 이뤄지지 않으면 무순위 청약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무순위청약은 청약통장 보유, 무주택여부 등 특별한 자격제한 없이 신청이 가능해 실수요자에게 주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청약제도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예비당첨자 수를 대폭 늘려 아예 잔여 물량이 무순위 청약까지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가령 1000가구짜리 분양 단지의 경우 현재 예비당첨자가 800명인데 이를 5배수인 5000명으로 늘린다. 국토부 관계자는 “청약 자격을 갖춘 예비당첨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실수요자들에게 잔여 물량이 돌아갈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김은진 부동산114 팀장은 “청약 제도가 워낙 복잡해 부적격 당첨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발생한 잔여 물량이 대거 무순위 청약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예비당첨자를 공급 물량의 5배수 정도로 책정하면 잔여 물량이 무순위 청약까지 넘어가는 일은 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