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가부도 위기 면해..'피해규모 25조원-땜질 처방' 후유증 남아

모두 지고 상처만 남은 싸움
정치, 경제적 파장 이어져
  • 등록 2013-10-17 오후 3:44:30

    수정 2013-10-17 오후 3:44:30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염지현 기자]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3개월짜리 땜질처방’에 그쳤다.

예산·재정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극한 대립으로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던 미국이 협상 시한 마지막 날인 16일(현지시간) 극적 타협을 이뤘다.

상·하원이 합의안을 잇따라 통과시켜 미국은 물론 전세계 경제를 한껏 긴장시켰던 예산전쟁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은 예산안 및 부채한도 증액문제를 내년 초반까지 한시적으로 미루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미국 정치권이 재정문제로 3개월 이내에 또다시 격돌하면 연방정부 셧다운(부분 업무정지)와 디폴트(국가부도) 위기가 또다시 불거질 수 있다.

◇‘루즈루즈(Lose-Lose) 게임..오바마 레임덕 심화·베이너 ‘셧다운 역풍’

연방정부 셧다운과 국가 디폴트 위기 협상과정은 워싱턴 정치의 양대 축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하원의장에게 커다란 정치적 상처를 남겼다.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국가위기 관리 능력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두 사람 모두 내부 강경노선에 밀려 초당적 타협정치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해 리더십의 근원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2기 첫해부터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국정운영 능력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지난 8월 이집트와 시리아 사태를 겪으면서 ‘외교의 수렁’에 빠졌던 오바마 대통령은 내치(內治)에서 이를 만회해보려고 했으나 여기에서 조차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사기관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셧다운 이후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은 37%(AP통신·3∼7일)에서 43%(갤럽·13∼15일)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2011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을 이끄는 베이너 하원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10일 발표한 정기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3%가 공화당에 셧다운 책임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율은 24%로 주저앉아 1989년 이후 24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공화당 내에서 ‘정치적 참사’라는 자평이 나오고 있다.

◇ S&P “셧다운 피해규모 25조원 넘어”

셧다운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도 심각하다. 16일간 이어진 셧다운 피해액이 240억 달러(약 25조6080억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중 하나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셧다운이 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을 0.6% 포인트 낮춰 2% 근처에 묶어 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콜로라도주를 비상사태로 몰아넣은 수해 피해(20억 달러)가 열 번 되풀이된 것 이상의 규모다.

또 셧다운으로 소비자신뢰지수가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최악 수준으로 떨어지고 셧다운 여파는 수입통관업무나 수출금융부문 등 연방정부와 관련 있는 여러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르게 회복세를 보여온 부동산 분야에도 타격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0월 전미주택건설협회(NAHB) 주택시장 지수도 전달에 비해 하락세를 면치 못했으며, 하락폭도 시장 전망치보다 컸다.

미국의 명성에도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트의 마커스 쇼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운용자산을 미국에서 다른 국가로 다각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이날 합의안 도출은 ‘종전’이 아닌 ‘휴전’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날 통과된 예산안의 적용 시한은 내년 1월 15일까지이고 부채 한도 증액안도 내년 2월 7일까지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봐도 예산 문제에서는 2014회계연도(이달 1일∼내년 9월 30일) 잠정 예산안도 아닌, 현 수준에서 내년 1월 중순까지 지출을 집행하라는 것이고 부채 한도도 법정 상한을 현행 16조7000억달러(약 1경7760조원)에서 더 높여준 게 아니라 긴급 조치를 통해 내년 2월 초까지 돈을 더 끌어다 쓰라는 것이다.

정치권은 이때까지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고 채무 상한도 재조정해 주먹구구식 땜질 조치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시한폭탄’이 또 초읽기에 들어가기 전에 워싱턴 정가가 미리미리 준비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지는 정치권발(發) 불확실성이 연말 연시는 물론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에 따라 월가에서는 ‘진짜 위기는 내년’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위든 앤드 컴퍼니의 마이클 퍼베스 글로벌 투자 책임자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재정 위기의 타임 존이 내년 1~2월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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