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올해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인 할머니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새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할머니들의 삶이 헛되지 않도록 저희가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제152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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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정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주최로 올해 마지막이자 ‘152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이날 수요시위는 올해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분의 넋을 기리는 행사로 열렸다. 매년 마지막 수요시위에서는 그 해 별세한 할머니들을 추모해 왔다.
올해에는 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자(99세)였던 정복수 할머니가 별세한 데 이어 5월과 9월 할머니 한 분씩 눈을 감아 총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생존 위안부 피해자는 13명만 남았다.
제단에는 신상공개를 원치 않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할머니들의 영정 사진 대신 꽃 그림과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는 문구가 자리했다. 영정 앞에는 꽃다발 3개가 놓였고, 참석자들은 흰 국화꽃을 비롯해 노랑, 주황, 분홍 등 색색의 꽃을 놓고 묵념하며 할머니들의 넋을 기렸다.
정의연 관계자는 “올해 국내 위안부 피해 할머니 세 분을 비롯해 중국과 필리핀에서 각각 한 분과 두 분을 떠나보냈다”며 “올해 돌아가신 할머니들은 개인적인 상황 공개를 원하지 않으셨던 분들인데 왜 아직도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지, 피해자의 목소리보다 가해를 재생산하는 목소리가 창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52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참가자들이 극우단체를 향해 ‘양심거울’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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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요시위가 진행된 맞은편에는 극우단체가 맞불 시위를 열어 소란이 일기도 했다. 소녀상 철거 등을 주장하는 반일동상 진실규명 공동대책위원회는 ‘위안부 동상 철거하라’, ‘수요집회 중단’, ‘정의연 해체’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이를 본 정의연 등 관계자들이 항의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수요시위 참가자들은 ‘양심거울’을 상대편에 비추며 맞섰다.
정의연 관계자는 “올해 수요시위가 참 힘이 든다”며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이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평화로를 점령해 혐오의 말을 퍼붓고 있어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정태효 정의연 전 이사도 “할머님들을 모시고 일본 증언 집회를 다녀왔을 때 많은 일본인이 찾아왔고 그 중에는 사죄하는 분도 있었다”며 “그런데 대한민국 한복판 서울에서 일장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이들은 양심을 어디에 팔았는지 되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예년보다 많은 이들이 참석하지 않았지만,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수요시위가 열린 옛 일본대사관 일대는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시민 수십여 명이 함께 자리했다.
재일교포 2세인 양징자(梁澄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할머니는 스승이셨다. 할머니를 뵙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처음으로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며 “할머니께서 보여주신 삶이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신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성명서를 통해 “어제는 2015 한일합의 6주년이었다. 피해자를 배제하고 역사의 정의를 세우려는 시민의 노력을 무시한 채 진행된 외교적 합의의 폐해를 안다”며 “이를 빌미로 역사 부정과 왜곡이 어떻게 자행되고 피해자가 어떻게 2차 피해를 당했는지 아프게 경험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이름조차 남길 수 없었던 피해자들을 다시 생각하며 인정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가해자를 역사의 수인으로 남겨두기 위해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1524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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