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공] 가끔 친구나 주위 분들로부터 법무에 관한 일로 전화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십여년 가까이 회사에서 법무 쪽 일을 맡아 하다 보니 변호사 등과 상의하는 것보다 편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도 사업하는 친구에게서 "받은 어음이 부도가 났는데 어찌해야 하느냐"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발행인은 누구고, 배서인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하고 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친구는 한사코 소송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느냐고 묻습니다. 소송이란 것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생소하기도 하겠지만 문제는 과다한 변호사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며칠 전 선배 한 분이 급하게 만나자고 해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땅을 매입하고자 계약했는데 그 잔금의 일부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지급하려 했답니다. 그런데 매입하고자 했던 토지 위에는 사용하지 않는 교회건물이 있어 지목이 "종교용지"인 관계로 대출이 되지 않는다는 은행의 답변에 선배는 계약금 1억 3천만원을 뜯기게 되었다고 난감해 하며 해결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호소였습니다.
더구나 토지를 판 매도인이 잔금기일을 넘기면 무조건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내용에 따라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태도이고 보니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계약이행의 지체는 사회통념상 어느 정도는 허용이 되느니만큼 일단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소송준비를 하라고 답변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 분이 변호사에게 갔더니 계약금 중 일부는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착수금 800만원, 승소사례금은 승소한 금액의 15%를 요구하는데 이것이 적정한 금액이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질문은 정말 난감합니다. 뭔가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전적으로 변호사와 의뢰인간 협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변호사 보수다 보니 대개 변호사가 제시하는 가격으로 결정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재래시장에서 물건 사는 것 마냥 깎아 달라고 말할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위 선배의 예에서 만약 50% 정도 승소한다고 하면 6500만원을 되찾게 되는데 변호사에게 지급해야 할 변호사 보수는 착수금 800만원과 승소사례금 975만원(6500만원×15%)으로 합계 1775만원입니다. 승소한 금액의 27% 정도가 변호사에게 지급되는 것입니다. 지나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보수기준에 관한 규칙" 2002년 1월에 없어져
2000년 1월 1일 이전에는 그래도 변호사 보수에 대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변호사법 제19조 "보수" 규정에 근거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만든 "변호사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이 그것입니다. 변호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정한 것이니만큼 금액이 과다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기준을 넘긴 과다한 변호사보수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조정이나 징계 등으로 자정작용을 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형사사건에 있어 500만원을 넘지 않도록 정한 것은 물론 이중으로 위임계약을 해야 했고, 탈법을 조장하기도 했지만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에게 족쇄가 될 만큼 양호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은 규제개혁 차원에서 "독점규제 및…"라는 소위 "카르텔일괄정리법"의 제정·공포에 따라 변호사법 제19조가 삭제되고, 그에 따라 동 규칙도 2000년 1월 1일에 폐지됐습니다. 그 이후 변호사 보수는 기준도 없이 전적으로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협의에 의해 정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변호사 보수는 변호사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변호사도 일종의 서비스업을 영위하는 사업체이기 때문에 제공되는 질(능력)에 따라 당연히 많을 수 있고 적게 받을 수 있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는 것이라 한다면 사실 할 말이 없습니다.
더구나 사람들은 보통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비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역시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비용을 찾을 수 있다고 이와 비슷한 말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판결문에는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또는 "소송비용의 1/5은 원고의, 나머지 4/5는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는 내용이 주문판결 아래에 반드시 따라 옵니다.
판결이 확정되고 승소한 쪽에서 소송비용을 받으려면 해당법원에 소송비용액 확정신청을 해야 합니다. 이 신청에 대해 법원은 소송비용액을 확정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소송비용확정 결정시 변호사에게 지급한 비용 모두를 인정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법원 규칙 있으나 소송비용 결정때 내부 기준으로만 적용
소송비용에서 80~90%를 차지하는 변호사 비용은 실제 지급한 액수를 기재해 신청하더라도 법원은 대법원규칙인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정해진 바에 따라 변호사 비용을 계산해 소송비용을 결정합니다. 이는 과도한 비용을 지불한 것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소송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설사 100% 승소하였다 하더라도 변호사에게 지급한 비용 전액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위 "변호사보수의 소송산입에 관한 규칙"의 변호사 수임료 산정 기준과 폐지된 "변호사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의 기준이 거의 같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착수금과 승소사례금을 이중으로 받는 관례에 따르면 변협의 기준이 대법원 규칙에 따른 수임료보다 높은 때가 많았습니다.
아무튼 두 가지 기준 중 어느 것을 적용해도 앞서 저를 찾아오셨던 선배의 예를 들어 살펴보면 지금 요구하고 있는 변호사 보수가 얼마나 턱없이 높은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대법원규칙인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착수금과 승소사례금 모두를 합하여 270만원만 변호사보수로 인정됩니다. 위 표에 따라 계산해 보면 소송물가액이 1억 3천만원이기 때문에 {255만원+(1억3천만원-1억원)×0.5/100}이 돼 {255만원+15만원}=270만원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폐지된 대한변호사협회의 "변호사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착수금 270만원-변협의 착수금 산출기준은 대법원규칙과 동일-과 승소사례금 220만원(50% 승소했을 경우)으로 합계 490만원을 지급하게 됩니다. 승소액수에 따라 적용되는 승소사례금은 대법원 규칙표에 따르면 {205만원+(6500만원-5000만원)×1/100}로 {205만원+1500만원×1/100}=220만원이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변호사가 요구한 1775만원에 비하면 1285만원이나 저렴합니다. 100% 승소하게 되면 착수금 270만원+승소사례금 270만원=540만원으로, 변호사가 요구한 착수금 800만원+승소사례금1950원(1억3천만원×15%)= 2750만원과 더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복덕방 수수료도 기준이 있는데...
현재 변호사 보수를 정한 법률이나 기준은 없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중개수수료나 감정평가수수료 등 대부분 업종의 수수료 기준이 정해져 있고 국민들의 과도한 부담을 덜기 위해 없는 규정도 만들어야 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있었던 규정까지 없앤 것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규제개혁 차원에서 동 규칙을 폐지한 것이 오히려 개악이 되었습니다.
동 기준이 폐지되는 것을 가장 반겼던 사람은 소위 인기 있고, 능력 있다고 알려진 변호사들이었을 겁니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에 따라 변호사 보수를 합리적으로 받는 변호사는 능력 없는 변호사로 비춰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보니 변호사 보수는 자꾸 올라갑니다.
분명 국민 대다수를 위하여 변호사 보수기준에 대한 규정은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규제개혁 등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기존의 변호사보수기준도 없앤 이 시점에서 대한변호사협회는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대법원에서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대법원 역시 아직까지 그런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혁은 때로 개악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개혁을 하려다 개악을 했으면 빨리 그 사실을 깨닫고 원상회복이나 다른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모른 체하는 것입니다. 변호사보수기준도 역시 그러한 사안입니다.
변호사 보수를 얼마로 정해야 하는지 주위에서 물어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알고 있는 변호사들 몇 분에게 물어보지만 제시하는 보수도 각기 다릅니다. 그럴 때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사보수의 소송산입에 관한 규칙의 규정이 있기는 있는데 그 금액을 고려하여 협의해 보십시오. 하지만 그 금액에는 어느 변호사도 소송을 위임받지 않을 겁니다."
어차피 기준이 없으니 대답도 궁여지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