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간첩단' 누명 쓴 故박노수 교수 등, 45년만에 무죄

대법 "유럽 간첩단에 연루된 박노수, 김규남 등 무죄"
1960년대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대표적 공안 사건
  • 등록 2015-12-29 오후 12:46:03

    수정 2015-12-29 오후 12:51:40

[이데일리 성세희 기자] 대법원이 45년 전 조작된 일명 ‘유럽 간첩단 사건’ 당사자에게 죄가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동베를린과 평양 등을 방문한 혐의(국가보안법 등)로 1972년 사형 선고를 받은 고(故) 박노수 영국 케임브리지 교수와 고(故) 김규남 민주공화당 의원, 김판수(73)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박 교수와 김 의원 등은 1960년대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하다가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베를린과 평양 등을 방문하고 귀국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1969년 4월 공산주의 국가를 방문해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박 교수 등을 서울 남산 분실로 연행했다.

중정은 박 교수 등이 평양에서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국가 기밀을 빼냈다는 ‘유럽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누명을 씌웠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박 교수 등이 중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2008년 과거사위 조사에서 “중정 수사관이 (자신에게) 매질부터 시작해 물과 전기로 고문했다”라고 진술했다.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은 1969년 11월 박 교수와 김 의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김씨에게 징역 7년에 자격 정지 7년을 내렸다. 박 교수 등은 항소했지만 김씨만 징역 5년으로 감형됐다. 박 교수 등은 1970년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돼 사형이 확정됐다. 박 교수와 김 의원은 사형이 확정된 지 2년 뒤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 교수 유족과 김씨 등은 2006년 “중정 수사관에게 강제로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며 과거사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과거사위는 2009년 “중정이 박 교수 등을 불법으로 가두고 과장해 간첩죄를 적용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박 교수 유족 등은 과거사위 결정문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김동오)는 2009년 열린 재심에서 박 교수 등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유죄로 주장한 내용을 인정할 증거가 없거나 부족해 (박 교수 등에게 내려진) 원심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하면서 박 교수 등은 45년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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