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증거물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오랜 기간 해외에 체류해있던 한 의원이 국내에 돌아와서도 입을 다물면서 수사가 미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 의원은 13일 장기간의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자리에서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 내 발언은 면책특권에 해당된다"며 경찰의 소환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경찰은 한 의원에 대해 오는 15일 출석할 것을 통보했었다. 한 의원은 "도청 여부는 민주당과 KBS가 풀어야 할 문제"라면서 "민주당이 할 일은 내가 누구에게 (녹취록을) 받아서 발언했느냐를 밝히는 게 아닌 도청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라며 도청의혹사건을 KBS와 민주당의 문제로 돌렸다.
한 의원이 ''면책특권''을 내세워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경찰은 한 의원에 대한 조사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국회의원 신분상) 면책특권이 신경쓰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사안은 면책 특권이 해당되는 경우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국민의 기본권 존중 차원에서 통신비밀보호법이 있는 것인데 도청은 이를 위반한 것인 만큼 면책특권이 관여할 부분으로 볼 수 없고, 만약 임시국회가 시작되는 8월까지 나오지 않을 경우 신성한 국회가 아닌 방탄 국회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는 한 의원이 (경찰서에) 나와 조사를 받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직접 도청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불법 도청한 내용을 공개한 것 만으로도 유죄가 된다.
경찰은 현재 한 의원에 대해 방문조사나 서면조사 방식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출석 조사 원칙 하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행 국회법상 국회의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한 발언은 면책특권에 해당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한 의원의 출두를 강요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면책특권이 도청의혹 사건 수사의 장벽이 될 경우 국회의원 면책특권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 가능성도 있다.
한 의원의 면책특권 주장에 대해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지금에 와서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민주당도 한의원에 대해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면책특권을 경찰 수사를 방해하는 방패막이로 계속 이용하려는 것은 불법 도청 행위자, 도청 문건 유포자를 은폐하는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라면서 수사에 협조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홍영표 원내대변인도 "헌법에서 국회의원들에게 보장한 면책특권은 결코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한 불법도청과 같은 범죄행위에 대해서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다"면서 "본인이 당당하다면 비겁하게 면책특권의 뒤에 숨지 말고 스스로 한 말과 행위에 대해 약속대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 의원이 경찰수사에 응하지 않기로 한 가운데 KBS 역시 경찰 수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사건 핵심 관계자인 KBS 장모 기자는 13일 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 8일 장 기자의 집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노트북PC와 스마트폰을 압수했지만 장 기자가 도청 의혹이 제기된 이후 스마트폰과 노트북PC를 교체한 것으로 드러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도청 의혹은 커지고 있지만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KBS와 한선교 의원이 경찰 수사에 응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어 수사는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