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직장 보직 청탁까지… 치맛바람의 진화

“여기 있는 직원들은 100% 빽이야!”
  • 등록 2009-02-23 오후 9:20:45

    수정 2009-02-23 오후 9:20:45

[조선일보 제공] 유력 시중은행의 서울 강남지역본부장이 올해 초 강남지역 지점들에 근무하는 직원들과 가진 회식 자리에서 한 이야기다.

이 은행은 입사 연차가 낮은 직원들은 3년 정도 지점에서 근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강남지역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부모나 친지의 강력한 청탁을 통해 '강남 근무'라는 혜택을 받았다는 의미였다.
 
이 은행 신입 직원들이 강남 지역 근무를 위해 부모를 동원한 청탁까지 마다않는 이유는 우선 상대적으로 실적을 올리기 좋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강남 지역 주민들 가운데 재력가가 많다 보니, 다른 지역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들보다 예금 수신 실적 등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강남 지역 지점에 근무하는 직원은 원래 강남 출신이 많기 때문에 출퇴근이 용이하다는 점도 선호 이유로 꼽힌다.

이처럼 부모들이 각종 연줄을 동원해 자녀들의 취업이나 근무 부서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녀가 중고교 시절일 때 좋은 대학 진학에 열의를 보이던 ‘헬리콥터 부모’가 장성(長成)한 자녀들의 취업이나 보직까지 챙기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자녀들의 취업이나 직장 생활까지 관여하려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저출산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 자녀가 한두 명에 그치다 보니, 부모들의 관심과 기대가 소수의 자녀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 일부 부모는 이 과정에서 황당한 요구로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당혹하게 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한 외국계 IT 기업의 임원이 지원서를 냈다가 떨어진 지원생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화가 대표적이다. 이 임원이 명문대 출신의 입사 지원생을 상대로 입사 동기를 집요하게 묻자 이 지원생은 결국 “어머니가 무조건 외국계 기업에 입사해야 한다고 해서 지원했다”고 대답했고, 분을 못삭인 지원생의 어머니가 “우리 애는 명문대 출신에 학점도 좋은데 왜 떨어뜨렸느냐”며 전화를 걸어와 거세게 항의했다는 것이다.
 
일부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들의 취업을 위한 학점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녀들의 학점이 나쁘게 나올 경우 직접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 시내 모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시간강사 A씨는 올해 초 자기 아들에게 왜 D학점을 줬느냐고 항의하는 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이 학생이 한 학기 동안 출석을 한두 번밖에 하지 않아 좋은 학점을 줄 수가 없었는데, 부모는 “출석을 하지 않으면 집으로 전화라도 해야 할 것 아니었냐”며 따졌다는 것이다.
 
A씨는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이면 자기 앞가림을 할 나이인데, 부모들이 대학생 자녀의 학점까지 챙기고 드니 할 말이 없더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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