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선거 의식했나…'인플레와 전쟁' 선언한 바이든(종합)

바이든 "휘발유 가격과 인플레 상승 모니터링"
미 정부, OPEC+ 산유국에 이례적인 증산 요구
원유 증산→유가 하락→물가 안정 효과 노린듯
"인플레 평가절하했던 백악관, 공개 대응 천명"
'내년 중간선거 의식' 정치적 목적도 깔려 있어
  • 등록 2021-08-12 오후 12:57:48

    수정 2021-08-12 오후 7:48:28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코트 오디토리엄에서 각주 지사와 시장, 선출직 관리들과 인프라 예산 법안을 주제로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산유국에 원유 증산을 직접 요구하는 강수를 뒀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안팎까지 오르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점증하는 만큼 유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생산을 늘려달라는 것이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문제를 챙기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가 충격을 막지 못하면 내년 중간선거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정치적인 계산 역시 깔린 것으로 읽힌다. 공화당은 그동안 천문학적인 인프라 예산을 근거로 ‘바이든플레이션(Bidenflation)’이라며 공격해 왔다. 일각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언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OPEC+에 원유 증산 압박한 바이든

11일(현지시간) CNBC 등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OPEC 플러스(+) 산유국 대표들과 회담을 갖고 원유 증산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OPEC+ 산유국들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이후 감소하는 수요에 맞춰 감산에 돌입했다. 올해 세계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면서 8월부터 내년까지 하루 40만배럴씩 기존 감산량을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백악관은 “(그 정도 감산 완화는) 세계 경기 회복의 결정적인 순간에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CNBC가 입수한 성명에 따르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우리는 가격 결정에 있어 경쟁적인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 OPEC+ 산유국들과 협의하고 있다”며 “OPEC+는 경기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OPEC+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하며 국제유가를 떨어뜨리라고 압박한 셈이다. 로이터는 “백악관이 성명을 낸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유가 있다. 미국 자동차협회(AAA) 집계를 보면, 미국 전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 기준 갤런당 3.186달러로 1년 전보다 1달러 이상 올랐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내놓은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은 1년새 41.8% 치솟았다. 땅이 넓은 미국은 차가 곧 발이다. 갈수록 오르는 휘발유 가격은 장바구니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한 배경 중 하나다.

백악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은 휘발유 가격이 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며 “행정부가 기름값을 낮추는데 어떠한 수단이라도 쓰기를 원하고 있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아울러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에 휘발유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소비자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불법 행위를 해소할 것을 지시했다.

‘물가 폭등’ 내년 중간선거 의식한듯

이뿐만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국 상원이 3조5000억달러 규모의 천문학적인 추가 인프라 예산 결의안을 가결한 뒤 백악관에서 “휘발유 가격과 인플레이션 상승을 적극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방준비제도(Fed)가 물가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듯한 근래 언급보다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CBS 뉴스는 “백악관은 그동안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평가절하해 왔다”며 “이제는 미국 가정에 대한 물가 압박에 공개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더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노동부에 따르면 7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5.4%를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5.3%)를 상회했다. 2008년 7월(5.5%)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다.

CNBC는 “여행 등에서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며 인플레이션을 뜨겁게 유지했다”며 “또 일부 기업들은 높아지는 인건비와 재료비를 소비자에 전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과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오고 있다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물가 상승률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있지만, 절대적인 수치 자체는 ‘역대급’으로 높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잡기에 직접 나선 것은 정치적인 계산도 깔려 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가 뛰면 선거에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년 임기의 미국 대통령 집권 2년 차에 열리는 중간선거는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지닌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보수 성향인 조 맨친 상원의원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경제 과열과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우려를 낳고 있다”며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을 촉구해 화제를 모았다. 민주당 내에서 근래 미국 전역의 물가 폭등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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