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진우기자] 기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취재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물었습니다. 대다수의 일치된 목소리를 요약하면 '그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피 흘리고 들어온 아들을 보는 아비의 심정은 알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하나하나 풀려나가면서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는 목소리는 묻히고 '그래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더 힘을 얻어가는 걸 느꼈습니다.
'재벌 회장이', '부하들을 동원해서', '공사장으로 끌고 가서', '쇠파이프로', '그래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등의 정황이 추가되면서 분노의 불길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건의 동기가 됐던, 김 회장의 아들이 청담동 술집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꺼낼 필요도 없는 사소한 문제가 됐습니다.
'내가 피해자'라는 김 회장 아들의 발언은 적어도 절반은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재벌집 자식의 뉘우침 없는 뻔뻔함'으로 비춰졌습니다. 심지어는 언론사 사설에 '어린놈이 그런 술집에 갔으니 맞아도 싸다'는 식의 논리도 등장하더군요.
어린 학생이 비싼 술집에 간 것이 문제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따로 풀어야 할 부분이지 술집에 간 재벌집 어린 학생은 공권력이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는 재벌 회장의 사적인 보복폭행을 그냥 묻어두자는 주장만큼이나 폭력적입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는데 재벌회장이라면 참았어야 한다는 잣대도 그래서 위험합니다. 이런 인식은 재벌회장이 사회적으로 공헌한 바가 많으니 분식회계나 횡령을 저질렀더라도 용서해주자는 논리로 재생산되곤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특권층의 사회적 의무)'를 아무 곳에나 갖다 붙이면 이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신문을 파는 데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는 결코 이롭지 못한 선동들이지요.
그만큼 재벌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분노가 크다는 반증이겠지만, 그런 국민감정은 특권층들이 법보다는 사설경호원의 힘에 더 의존하게 만드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우선 김승연 씨가 재벌 회장인 것과 이 사건의 판단은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우리는 재벌회장이라는 이유로 수사과정에서 부당한 배려와 보호를 받는 것에 주저없이 분노해야 하지만, 재벌회장의 아들이 폭행사건의 피해자가 됐을 때 국민의 알권리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부당한 사생활 침해가 무작정 용인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재벌회장이 사설 경호원을 동원해서 사형(私刑)을 가한 것에 대한 비난에 그칠 것이 아니라, 청담동에서 그 재벌의 아들은 왜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했으며 북창동과 청계산에서 폭행당한 술집 종업원들에게는 왜 공권력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는가에 대한 반성과 분석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는 안된다'는 나무람에 집착해서 범죄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 심정만큼은 이해가 간다'는 평범한 아버지들의 체념속에 담긴, 우리 사회의 공권력 부재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사회 상당수의 아버지들이 이번 사건에 분노하는 이면에 '나는 재벌회장이 아니어서 아들이 맞고 들어와도 참고 넘기는 수 밖에 없지만 김승연씨는 돈의 힘으로 사적인 보복을 했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깔려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박탈감이 든다면 재벌회장이 아닌 평범한 시민의 아들이라도 폭력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드는 방향으로 힘을 쏟아야죠.
법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명제는 김승연씨의 아들에게도, 북창동의 종업원들에게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합니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가 재벌 회장이라는 이유로 '내가 폭력으로부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니 너도 똑같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야 하는데 넌 왜 튀냐'는 우격다짐식의 여론이 형성될까 걱정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의 공권력과 시민보호 시스템의 커다란 구멍을 한 재벌 일가가 돈의 힘으로 휘젓고 조롱한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기분은 나쁘고 화도 나겠지요. 그 재벌을 잡아다가 혼을 내주고도 싶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 세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은 '재벌도 함부로 날뛰면 국민들한테 혼난다'는 선례보다는 '공권력은 재벌의 아들이건 서민의 아들이건 그들이 그 힘의 보호를 필요로 할 때 반드시 그 자리에 있다'는 확신과 이를 보장하는 시스템이어야 할 겁니다. 둘 다 물려주면 좋지만 우리는 늘 피상적인 것에 집착하다가 본질을 놓쳐왔습니다.
우리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던 유력한 대선후보를 선거에서 떨어뜨렸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군대는 젊음을 썩히는 곳'이라는 젊은이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해내지 못했습니다.
연쇄성폭행살인범이 누구를 어떻게 토막살인했는지는 수사와 보도를 통해 적나라하게 알게 됐지만 그런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우리의 딸들을 보호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모릅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격언은 죄를 지은 사람을 감싸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미워하다가 죄의 본질과 원인을 놓치면 같은 일이 또 벌어지기 마련이라는 충고가 담긴 말이지요. 이번 사건도 망나니같은 재벌회장을 혼내줬다는 기억만을 남기고 잊혀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