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유학비 송금 편해진다...연 10만달러 신고 없이 즉시 이체(종합)

자본거래 사전신고 축소…해외투자 보고 제도 정비
신고 의무 위반 시 경고 부과 기준 5만불로 상향
대형증권사 환전업무 허용…외환제도발전심의위 설치
추경호 "수십년 관행 전면 개선…단계적 추진할 것"
  • 등록 2023-02-10 오후 12:27:46

    수정 2023-02-10 오후 12:50:47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김은비 기자] A씨는 미국 소재 대학에 입학한 자녀가 현지 정착을 위해 집을 구하는 비용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당장 7만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 같다는 말에 모아둔 돈을 바로 송금해주려고 했으나, 보내줄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은행으로부터는 연 5만달러 이상을 보낼 경우 증빙 서류가 필요하고, 아직 해외 출국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목적을 규명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앞으로 이같은 사례는 나오지 않을 예정이다. 정부가 외환 제도 전면 손질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제 증빙이 필요 없는 해외 송금 한도를 연간 10만달러까지 확대하고, 사전 신고를 해야 하는 외환 자본거래 유형도 대폭 축소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 규제혁신 TF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획재정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주재하는 경제규제 혁신 테스크포스(TF)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외환제도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은 외화 유출 억제 철학이 담긴 구시대적인 외환법이 지난 20년 동안 성장한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현재 외환법은 1999년 외국환관리법에서 전환된 후 부분적으로만 수정되며 큰 틀에서 제도를 유지해왔다.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외금융자산은 1999년에 비해 13.9배 늘어난 2조1784억달러(2021년 말 기준)에 달한다.

정부는 법 개정까지는 적어도 3년여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개편을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1단계로 올해 상반기까지 시행령·규정 사항을 개정하고, 연말에는 개편 방향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증빙 해외송금 확대…자본거래 사전신고 축소

국민 입장에서 가장 체감할 만한 변화는 외환 송금의 문턱이 사라지는 것이다. 현행 법에 의하면 미화 5만달러까지 해외 송금은 비교적 자유롭게 가능하지만, 이를 초과할 경우 장벽이 급격히 높아진다. 외국환거래은행을 지정한 후 영업점을 통해서만 송금할 수 있고, 사전에 매매 사유와 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증명 서류들을 제출해야 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증빙서류 확인이 필요하지 않은 해외송금의 한도를 기존 연간 5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늘어난다. 다만 한도 관리를 위해 거래 외국환 은행을 지정해야 하는 의무는 유지한다. 규제 정합성을 위해 자본거래 사전신고를 면제하는 기준도 연간 5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확대한다. 자본거래 관련 은행 사전신고가 필요한 유형은 111개에서 65개로 대폭 축소된다.

현재 기업은 연간 3000만달러를 초과하는 대규모 외화자금을 해외에서 차입할 때 기재부와 한국은행에 사전신고가 필요한데, 이 금액을 5000만달러로 늘린다. 1970년대 규제였던 현지금융 제도는 별도 규율을 폐지하고 금전대차·보증으로 통합한다. 해외직접투자에 대한 기존의 수시보고 체계도 사라진다. 연 1회 정기보고로 대체하며 보고 내용도 대폭 축소할 예정이다.

신고 관련 형벌 규정도 합리화한다. 현행법상 2만 달러 이상 소액거래를 사전 신고하지 않을 경우 200만원, 사후보고를 위반하면 700만원이 과태료로 부과된다. 10억원 이상 자본거래 및 25억원 초과하는 비정형적 지급 시 사전신고 절차를 위반하면 징역 1년 또는 벌금 1억원 이하 형벌의 대상이 된다. 이제 과태료가 부과되는 자본거래 신고의무 위반 기준은 5만 달러 이상으로 올라가고, 사전신고 등의 절차적 의무 위반의 형벌적용 대상 기준 금액을 2배 상향한다.
6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형 증권사 환전 업무 가능…외환제도발전심의위 신설

정부는 현재 은행과 일부 금융투자사만 가능했던 일반 환전 업무를 대형 증권사에까지 허용한다. 외환전산망을 직접 연결하고 시스템·인력 확충 등 인프라 구축을 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9개사도 국민과 기업에 대한 환전 업무가 가능해질 예정이다.

증권금융은 스와프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020년 ‘마진콜’ 사태에서 드러났듯 증권금융은 스와프시장에서 외국환중개사와의 거래를 할 수 없어 외화를 조달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제약이 있는 환경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편의성을 제고하기 위해 추가 계좌 개설이 필요 없는 제3자 FX도 허용한다.

또 정부는 위기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도 개편한다. 전시, 천재지변, 경제급변 등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극약처방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데서 실효성 문제가 지적된 ‘세이프가드’를 보완할 예정이다. 대외 건전성 악화 정도에 따라 협의-권고-명령 등 단계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을 명문화하기로 했다.

현재 최종 유권해석을 전담하고 있는 기재부의 역할은 향후 ‘외환제도발전심의위원회’를 통해 이뤄진다. 이는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을 위원장으로 금융위·관세청·한은·금감원 국장급 당연직위원과 학계·법조계·업계 외부 위촉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신(新)외환법 개정으로 향하는 2단계 과제 추진을 위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외환제도 개편은 수십년 간 형성된 관행의 전면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서두르지 않고 신중한 자세로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각종 규제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도록 획기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기업현장의 어려움도 세심히 살피고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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